한재골을 오르고 있을 때 반대편에서 걸어오는 이들의 대화를 듣게 됐는데요 아마도 그 날이 주말인지라 아빠가 두 딸을 데리고 나오면서 아내를 쉬게 하려하나보다 여겨졌습니다.
아빠 왈 엄마는 뭐하고 있을까?~
딸1 자고 있거나 핸드폰 하고 있겄제~
딸2 핸드폰 하고 있을거야~
대화를 들으며 피식 웃음이 나왔습니다. 저리도 엄마를 잘 알고 있구나~
아이들이 자라면서 하나님의 지점을 자연스럽게 알아간다는 말씀과 연결 되어지면서
우리 아이들도 어렸을 적 얼마나 엄마나 아빠를 잘 알고 판단이 되었을까 싶었습니다.
저건 하나님적이야, 아니야 저건 너무 엄마 아빠의 혼적이고 인간적인 부분이다는 것을 다 아는 거지요.
지금 돌이켜보면 하나님을 믿는 다고 믿었는데 너~무 부족하고 너~무 미흡함이 느껴집니다. 하나님의 기준, 사상, 가치, 생각이 무엇인지 알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려함이 너무너무 부족했던 것이지요. 주님의 생각이 뭐예요?~ 여쭤보고 알아보고 주님 생각과 제 생각이 다르면 제 생각을 바꿔가야 했었는데 제가 지킬만하고 제 머리에서 찬동이되어지면 따라가지만 대부분의 많은 것들에선 제 생각을 주장하고 제가 옳다고, 나를 무시하지 마라고 살아왔으니 이게 무슨 하나님 신앙이었겠습니까!
그런 측면에서 너무너무 아쉽고 주님께 죄송하고 우리 현미에게도 우리 애들에게도 너~무 미안합니다.
네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제 딴에는 노엽게 하지 않는다고 큰 소리는 안 내려 했고 애들 앞에서 부부싸움은 안 하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저 어렸을 적 부모님의 싸우시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절대로 부부싸움 안 할 거야, 어째 저리들 인생을 사실까? 많이 많이 못마땅해 했고 그 순간이 무섭고 떨렸으니까요. 그런데 막상 실전에선 그게 그렇게 되나요?~
애들에게 큰 소리는 내지않고 대신 못마땅한 모습을 보면 한숨을 쉬었습니다. 그럼 우리 예지는 그 한숨 소리가 너~무 싫었던 것인데 저는 참는다고, 열심히 아빠 노릇한다고 생각을 했으니 얼마나 부족하고 어처구니 없는 모습인지 모릅니다. 이럴 때 아이들은 차라리 소리를 치세요 소리를! 저는 저대로 참고 우리 부모님 보다는 그래도 나은 모습으로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해서 공로 의식이 있구요 애들은 아빠의 그 한숨 소리가 너~무 싫어서 아빠와 마음이 멀어진 것이었는데 세상에나 그걸 몰랐다니까요. 얼마나 우매하고 어리석었던지요?~
좋은 관계가 안 되는데 어찌 아빠의 말이 아이의 마음에 들어갈 수 있었겠어요?~
이런 상태에서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는 모든 소리는 옳은 개소리가 되었던 것을 이제는 더 알게 됩니다. 위하는 마음이 흘러가야 아이도 아빠를 위하는 마음이 같이 흐를텐데 옳고 그름이라는 사단이 주는 사상, 가치, 기준, 생각으로 살았으니 지옥이 풀어졌던 것입니다. 세상에 지옥 속에 살면서도 자신은 지옥인지를 몰랐던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주님은 얼마나 마음이 아프고 힘드셨을까요?~ 제가 죄인임을 알고 주님 앞에 나아가야 물꼬가 트일텐데, 그래야 죄사함이 풀어지고 은혜가 왕노릇하는 지점의 삶을 살 수 있을텐데 너무나 많은 세월을 주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지옥같은 생을 살아왔음이 인식되어집니다. 그래서 요즘 만나는 마음은 우리 남원이 형제가 목사님 말씀을 가져갔던 것처럼 정성을 들여야 하는 거구나~ 그리고 그 무엇보다 이 모든 것은 영으로 가득하여야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삶이구나!~ 그러니 주님을 영에서 만나는 시간을 확보하고 실제로 만나가고 싶은 마음이 예전보다 더 많아지는 요즘입니다.
돌이켜보면 살만하니까, 육과 혼으로 살아도 살만하다고 여겨져서 영의 시간을 가지지 않았드라구요. 이 마음을 좀 더 일찍 깨달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지만 지금이라도 이 마음 알아가게 하시니 감사입니다. 배운다고 되는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어떠함을, 내 육과 혼으로는 정말로 안 된다는 것을 스스로 깊게, 정말 뼈저리게 느껴야 가능한 것이어서 아프지만 이런 상황을 살게 하심이었습니다.
도대체 난 뭘 믿고 신앙 생활한다고 생각했을까?~ 내가 도대체 신앙이 있는 자였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함께 해주시고 용납해주시고 기다려주시고 인내하시고 포기하지 않으시고 만지시고 인도하심이 바로 아버지 하나님의 아버지 노릇 해주심이었기에 정~~말 감사가 됩니다.
네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는 말씀은
자녀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받고 모든 부족을 용서하고 이해하고 용납하는, 사랑이 뚝뚝 떨어지는 하나님 지점의 말씀이구나! 하나님처럼 되라는 말씀이구나가 알아집니다.
그런데 제가 어떻게 이 말씀을 이뤄낼 수 있을까요?~
아마도 예전 같으면 그래도 뭐라도 행하려는 태도들을 취하려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압니다. 저는 이 말씀을 내 힘으로 이뤄낼 수 없는 자임을, 내 힘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제는 압니다. 이 자세로 주님 말씀 앞에 서면 늘 제 부족만 보이고 아 내가 이렇게 죄인이구나, 또 죄를 지었구나 하며 세리처럼 납작 엎드러진 생을 살았을 것인데 나를 무시하지 마라 면서 힘들게 해댔으니 얼마나 유치빤스같은 치졸한 모습이었던가!
이제는 그렇게 살지 말자~ 설령 또 그렇게 살았고 또 사는 모습이 많이 나타나겠지만 미성숙한 존재로 출시되었기에 그건 당연한 모습임을 인정하고 내 육과 혼으로는 어떻에 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개떡같이 살았음을 인정하고 주님 앞에 말씀드리고 다시 내 안에 있는 하나님으로 살고 싶어요, 주님 닮고 싶어요, 말로만이 아니라 실제로 주님으로, 명사여격이라 하셨던 주님을 수단으로 하는 삶을 살고 싶어요 하면서 내 의식을 무시하지 말고 소중히 여기면서 내 안에 하나님 적인 마음을 담으면서 영을 만나면서 살고 싶다.
이 마음은 이번 주의 마음이구요 이전의 저는 개떡같이 사는 제 자신이 너무 못마땅했습니다. 그런데 영을 만나면 육과 혼의 삶이 아니라 하니까 얼른 만나서 주님으로 가득찬 삶, 개떡같지 않은 주님 닮은 삶 살고 싶은 마음에 영을 만나려하지만 제 마음처럼 깊게 안 만나지는 겁니다. 그러니 늘 제 안에 있는 주님 닮고 싶어요, 주님으로 진짜 살고 싶어요, 주님의 속성이 흐르는 삶, 천국의 삶 살고 싶어요 하는 이런 마음들을 보면서도 말로만 그러면 뭐해?~ 실제가 되어야지?~ 주댕이만 살아서 뭔 쓰잘데기가 있대니 하면서 이런 마음을 무시하면서 영으로 덮어지지 않는 제 자신을 못마땅해 하면서 살았지요.
그러면서도 죄사함, 복음의 사이클로 돌아가서 감사, 기쁨을 만나다가도
일상에서는 개떡같은 삶이 늘 상이니까 이렇게 죄가 납시는 삶을 살아왔었구나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주 창세기 시간에 마음의 원리에 대해 다시 설명해 주셨어요.
겉마음은 혼의 마음이다. 내 온 몸에 영이 가득~히 있고 영의 마음 위에 혼의 마음이 덮고 있다. 사람마다 두께가 다르지만 가슴만이 마음이 아니고 온 몸이 마음인데 이렇게 혼의 마음이 덮고 있다. 혼의 여러 소욕이 있는데 내 마음을 가만히 느끼면 영의 마음들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영이 많이 일어나지 않으면 의식, 하고 싶다! 예를 들면 나 하나님 찬양하고 싶다, 나 사람들 섬기고 싶다는 마음이 있는데 혼이 두꺼울 때는 의식, ~~하고 싶다로 느껴진다. 하고 싶은 마음이 진하게 우러나오지 않지만 그것도 내 안의 영의 소욕이다. 그런데 그때 ~하고 싶다를 되뇌이면 / 하나님 닮아가고 싶다, 하나님처럼 거룩해지고 싶다를 내 마음에서 되뇌이면 점점점점 그 영의 소욕이 진하게 느껴지기 시작하고 일어나기 시작한다. 이게 마음의 원리다. 의식, 영의 소욕이 의식처럼 느껴지는 ~~하고 싶다가 느껴지는 것을 무시해버리면 영의 소욕의 삶으로 들어가는 것이 너무 늦어진다. 언제 되냐면 영이 많이 일어났을 때만 된다.
제가 이랬어요. 가끔 영이 많이 일어나면 그때는 되니까 깊은 숨이 쉬어지면서 그래 인생은 이렇게 사는 거야 하는데 영이 많이 일어남은 가끔 되잖아요?~
그런데 영이 많이 일어날때만 되는 것이 아니라 하시면서 마음의 원리를 알면 쌩 고생을 덜 한다. 하나님으로 가득해지고 싶다, 하나님을 보이는 자의 삶을 살고 싶다, 그 싶다를 느껴보면 그런 마음이 있는 것 같은 것이 의식이다. 느껴지지 않아도 그런 원함이 있는 것 같은 그것이 의식이다. 그 소욕이 의식이 된다. 그럴 때 이 영의 소욕이 내 안에 있구나, 내 깊은 마음에 이 의식이 있구나, 만나기만 하면 찐해지겠구나 이러면 된다 하셨어요.
그러면서 드는 생각 이것이 공명의 원리라는 말이구나~
영 만날 때 공명에 대해 말씀해 주시는데 저는 잘 안 느껴지드라구요. 왜 그랬을까 생각해보니 제 원함이 엄청 커서 조금 느껴지는 것은 너무 미미하고 짜잔해서 그것을 무가치하게 여겨버린 거예요. 그러면서 저 엄청난 것을 간증하는 분들처럼 나도 엄청나게 느끼고 간증해서 나를 좀 폼나게 해야지 하는 인간적인, 사단적인 소욕이 가득했으니 뭐가 됐겠는가?~ 싶으면서 아이고 인생아! 좀 일찍 깨닫지 그랬니?~~~ 하는 아쉽고 속상한 마음이 만나집니다.
그러면서 계속 목사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소욕은 같은 성령님이 우리 속에 계시기에 다 같이 영의 소욕이 있고 그 소욕을 다 의식할 수 있다. 차이점은 실제로 느낀다, 덜 느낀다는 것이다. 저 분은 영의 소욕이 있고 나는 없나 보다 라고 여기면 엄청 늦어져버린다.
영의 소욕이 기본적으로 있으면서도 나는 없나봐~ 왜? 안 느껴지니까~
그게 아니라 영의 소욕이 너도 있고 나도 있는데 영을 많이 만나서 실감을 하느냐 덜 하느냐? 차이다.
아 저 분이 느껴진다고? 그럼 나도 같은 성령님이 계시니까 나도 있겠네 라고 여기면 의식이 된다! 그 소욕을 되뇌이면 의식이 된다. 성령님 소욕의 있는 정도가 1부터 100이라면 나는 1만 있다~ 근데 그 1을 값어치없게 버리면 성령의 소욕이 실제됨이 막연하게 진행된다. 이게 하나님 자녀를 만들어가시는 하나님의 방법이다.
실제에만 초점을 맞추면 하나님 구원의 경륜이 힘있게 진행이 안 된다.
여기까지 들으면서 늘 원리 원리 말씀하셨는데 난 목사님과 같이 아 저 분이 느껴진다고? 그럼 나도 같은 성령님이 계시니까 나도 있겠네 이런 생각을 못하고 아 나는 안돼~
오늘도 개떡같이 살아버렸어. 실패한 거야~
왜냐하면 제 기준은 늘상 실제였거든요 실제.
그래서 늘 상 넘어지고 또 넘어지고 그래도 신앙생활은 해야겠고 그렇게 꾸역꾸역 살아오면서 넘어지고 깨지고 엎어지고 이런 사단에게 먹힌 삶을 살아왔구나가 인식이 되어졌습니다.
요즘 자주 하는 질문은 하나님 살아계심을 내가 진짜로 믿는다면?인데요
이 질문을 하고 가만히 있으면 항상 모든 일에 감사하지~~ 맞아 감사하는데 선택적으로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모든 일에 감사하지~
이건 하나님처럼 되어야 가능한건데 제 의식에서는 찬동이 된다는 것이 감사가 됩니다. 이렇게 살고 싶은 겁니다. 영으로 가득한 삶 살고 싶은 겁니다. 그럼 이 말을 되뇌이면 되는 거고 그러면 깊은 마음에 터치가 일어납니다. 그러다보면 눈물이 핑 돌기도 하고 가슴 벅차기도 하고 희락도 만나지기도 하고 그래서 제 마음이 행복해 집니다. 마음에서 아무것 하지 않았음에도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주님께 영광입니다 라는 고백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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