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12월13일 주일설교
교회 다닌다고 하는 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거죠.
살아계신 하나님 만나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다. 다 쉽게 되게 해 놓으셨다.
하나님 지으신 만물을 정말 객관적으로 보면
아 하나님이 하셨구나, 우연히 될 수 없구나를 깨달을 수 있다.
이제 수정된 다음에 분할되는 장면을 보실텐데 이게 우연히 될까? 어떻게 우연히 똑같은 염색체 하나가 둘로 나뉘고 또 그게 4개로 나뉘며 자동적으로 분할이 되는지, 하나님이 저렇게 해 놓으셨음을 보시면서 보시게요.
태반이 되는 것으로, 몸을 만드는 것으로 나눠진다. 둘러쌓인 것에서 나와 자궁벽에 붙는데 이게 어떻게 우연히 되겠는가?
목포에서 모세오경 들으러갔는데 좋은 목사님과 함께 하게 돼서 너무너무 감사하다.
한 목사님이 대표기도를 하시는데 오늘 말씀을 통해 무장해제 시켜주심에 감사하다고, 그 말은 자신의 목회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는 말이었다. 그 목사님이 결혼 초에 싸운 이야기를 하셨다. 명랑한 사모님이 꼭지가 돌아서 목사님의 팔을 이빨로 물고 흔들어버리니 목사님도 꼭지가 돌아서 막 해버렸다.
우리는 다 꼬라지가 있다.
저도 어릴 때부터 꼬라지가 있었는데 5살 때인가 굴렁쇠 막대기로 작은 형을 뭔 이유인지른 모르나 때려버렸다. 초딩 4학년 때 분단장할 때 화가 나서 구슬을 복도 유리창 사이로 던진다는 게 유리창 깰정로 정말 성질이 더러웠다.
결혼해서는 주먹으로 베니아판 방문을 구멍 내고 상을 걷어차고.
주일 아침 말다툼 후 식사 상을 턱 놓길래 꼬라지 부린 거야 하고 밥상을 발로 찼다.
삼성 개척교회 때 말다툼 후 이놈의 사단새끼라길래 나한테 하는 줄 알고 머리를 잡고 밀어버렸다.
욱- 하고 올라온 것 있었다. 지금은 그만큼 올라온 것 없다.
제가 막∼ 눌러서가 아니고 새 마음, 부드러운 마음이 제 안에 흐르면서 욱- 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약해진 것이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변화는 의지적 노력 아니고 만약 의지적으로 한다면 결국 종교에 그친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변화는 하나님으로 하는 것이다. 하나님 내 안에 오셔서 하나님 으로 가득해져서 하나님의 새 마음으로 물들여 지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하나님 내 안에 모신 것으로 끝나는 것 아니다. 내 안에 오신 하나님 만나고 만나 그 하나님으로 가득해져 가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이걸 아느냐? 하나님이 느껴지니까, 하나님으로 가득해져 감이 내 안에서 내 몸에서 느껴지니까 안다.
하나님을 만나면 만날수록 내 안에 가득해져가니 그걸 이해하기 쉽게 하나님으로 물들여진다고 표현하는 것이다. 하나님 내 안에 가득해짐을, 물들어짐을 느끼고 새 마음이 흐르기에 욱하는 것이 약해지고 사라져가게 된다. 이것이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구원의 경륜이 이뤄져가는 지점이다. 그 하나님의 지점은, 예수님을 믿는 목표점은 하나님 닮음이다.
사람의 힘으로, 의지로 하는 것이 아니고 내 안에 오신 하나님이 내 안에 가득하심으로, 내 몸이 하나님으로 가득 물들여짐으로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에스겔 36:26-27이 그대로 이뤄지는 것이다.
갈 5:16, 22-23 성령의 열매가 내 안에 그대로 이뤄지는 것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복음,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시작되었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하나님 나라 천국이 내 안에서 실제로 이뤄지는 것이고 그게 예수 믿는 것이다.
천국이 실제 내 안에서 이뤄지는 것이고 최고의 행복 누리는 것이다.
(겔 36:26-27) 『[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27]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갈 5: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영으로)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갈 5:22-23)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 말씀을 내 안에 이룸에 있어서 실수 하나가 자꾸 자기 힘으로 하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을 내 힘으로 이루려고 한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되었을텐데...’
이 세상 가치 기준으로는 세상일은 조금만 노력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는데 있어서도 그렇게 하려고 한다. 내가 의지적으로 노력하면 이 세상의 것들은 이룰 수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 닮음은 사람의 힘으로, 노력으로 안 된다.
아니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 닮음을 내 힘으로 하겠나~ 인간 노력으로 해 봐야 사람이 했으니 그건 사람 맛 나는 열매이다. 하나님 맛 나는 열매 아니니 불합격이고 하나님과 아무 상관없다. 아무 소용이 없다.
우리가 실수하는 것이 뭐냐 하면 하나님 말씀이 이 땅에서의 삶을 말씀한다고,
인간의 관점에서 생각하여 착각한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이 땅에 사는 사람에게 이 땅에서 사는데 이렇게 살면 좋아, 그런 것이 아니다.
천국에서 사는, 하나님 적으로 사는 것을 이 땅에 사는 사람에게 이야기하는 것이다.
애들아, 이렇게 살아야 진짜 행복해.
하나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 적으로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천국에서 사는 것은 어떤 것인지를 배워야하는데 어리석은 인간들이 자꾸 인간적인 관점으로만 본다. 그렇지 않다.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의 삶,
하나님을 닮은 삶을 어떻게 사는 지를 가르쳐주는 것이 말씀이다.
어떻게? 사람이 하나님처럼 살 수 있냐?
하나님 내 안에 모셔서 하나님으로 살면 된다.
내 인간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닌데 자꾸 인간의 노력으로 하려고 한다.
성경에 ‘영으로’ 산다, ‘그리스도’로 산다 라고 표현되어있다.
하나님으로 살아라, 니 안에 오신 하나님으로 살아라.
내 안에 오신 하나님을 만나고 만나면 하나님이 느껴지고 그 하나님이 내 안에 가득해짐으로 이것이 새 마음이 되어 나로 하여금 하나님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하시는 것이다. 에스겔 36:26,27 말씀이다.
우리가 자주 하는 실수 또 하나는 안 된다고 아예 포기한다.
사람의 힘으로 의지의 노력으로 하려는 연장선이다.
아이 해보니까 안 되네, 아고 안 된 가비여?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수 있나?’
이렇게 말하고 포기한다. 마찬가지로 성경을 사람의 수준으로 본다.
하나님 말씀 지킬 수 있다 하면 부담스럽다.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 말씀을 지킬 수 있어~ 어떻게 하나님을 닮을 수 있어~
그래서 하나님 말씀을 회피하고 물 타기 시작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가는 말씀이 뭐냐? 죄 사함의 말씀이다. 그래서 죄 사함이 인기다.
하나님 말씀을 지키지 못하고 죄만 짓게 되니까 결국 궁극적인 종착역은 죄 사함이다. 그래서 뭐라고 이야기 하냐 하면 이 성경의 종착점이 궁극적인 말씀이 죄 사함이라 한다. 성경을 쫙 짜면 한마디 나오는 것이 뭐냐? 죄 사함, 예수의 피라 한다.
죄 사함은 시작점인데. 죄 사함은 너무 너무 중요하다.
예수의 피로 우리의 모든 죄가 다 사해진다.
그렇지만 죄 사함은 하나님 닮음을 목적으로 한다.
너무 사람들이 하나님 안에 들어와서도 하나님 말씀을 자기 수준으로 끌어내려서.
참 이게 문제다.
구약과 신약 전체의 흐름을 우리가 보면 좋지만, 성경이 너무 두껍지만
언젠가는 꼭 한번 보시라.
언젠가도 말씀드렸지만 성도들이 우매하면 그 목사가 가르쳐 준대로만 따라간다.
성경을 모르니까. 성경을 쫙 짜면 한 방울 나온다.
하나님을 닮은 하나님 자녀 만드는 것. 맞나? 여러분이 확인해보셔야 한다.
하나님의 구원 경륜이 완성된 계 21,22장을 보면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이 하나님을 닮은 하나님의 아들들을 만드심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계 21,22장 보면 천국, 하나님 나라, 새 하늘과 새 땅이 나오는데 거기 보면 하나님과 구원받은 자들이 나온다.
그리고 그 구원받은 자들은 다 하나님을 닮아있다.
21장 9절을 보면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를 보여주시는데
그게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 성이다.
그러니까 모양은 성처럼 보이는데 그게 사람이다 구원받은 사람.
그런데 구원받은 사람들의 성의 모습을 묘사하는데
11절 보니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 같이 맑더라 그랬다.
이게 하나님을 닮은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계4:3을 보면 앉으신 이의 모양이, 이게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모양이 어떻다고 묘사 하냐 하면 벽옥과 홍보석 같다 하신다.
하나님의 찬란한 모습을 보석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계시록 21장 가보니까 구원받은 아들들의 모습이 보석으로 묘사되어있다,
하나님을 닮아있다.
(계 21:9-11) 『[9]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이르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10]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하나님의 영광이 있어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 같이 맑더라』
(계 4:3)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
구약에 가보면 제사장의 복장이 나오는데 제사장이 입는 옷에 보석들이 덕지덕지 달린다. 여기도 보석, 흉패할 때 여기도 12개의 보석으로 한다. 뭘 의미하는가?
제사장 이마에 폐를 두르는데 거기에 여호와께 성결이라는 문구를 새기라 한다.
제사장은 구원받은 자녀의 모습을 나타내는 거다.
구약에서부터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닮도록 의도하셨다.
그게 구원의 목적이다. 성경 전체가 엄청 많게 이 흐름으로 간다.
(마 5: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롬 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번역 잘 못되었다. 얼마나 인간이 하나님을 닮는 다고 하는 것이 부담스러웠으면 그렇게 표현하는 것을 물 타기로 번역을 했다.
그 아들과 동일한 형상이 되기 위해서, 그 아들과 동일한 형상, 동일한 형상!
(엡 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게 목표다. 온전한 사람,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사람.
(갈 4:19)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바울이 하나님의 사람들을 양육하는 목표가
그들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는 것이었다.
(엡 5:1) 『그러므로 사랑을 받는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벧후 1:4)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신성한 성품을 직역하면 신의 속성이다.
아 우리를 신의 속성에 참여하게 했어? 너무 부담스러워. 그러니 저렇게 약화시켜서 번역을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닮지 않으면 하나님 구원 경륜 이루지 못한 것이다.
하나님을 닮지 않으면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이 이뤄지지 않는 것이 된다.
교회 다니다 보면 교회 안에 그럴 듯 하고 좋은 것이 너무너무 많다. 소위 은혜스럽고 내 마음을 촉촉하게 하고 뭔가 은혜가 적셔지는 교회가 많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나로 하여금 하나님을 닮게 하는 쪽으로 가게하지 않는다면 그건 다 사기다. 유사고 다 사기다. 여러분 하나님 닮아가고 있는가? 그렇게 되고 있는 중인가? 조금씩 그렇게 되고 있는가?
그럼 여러분은 하나님 구원의 경륜을 잘 가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 닮음이 뭔지 모르고 아직도 막막한가?
그럼 여러분 신앙생활 잘 못하고 있는 것이다.
교회를 잘 못 택했든지 인도자를 잘 못 만났든지.
죄 사함이 중요하지만 죄 사함의 은혜만 가르치는 설교고 가르침이고 프로그램이라면, 그래서 하나님 닮음으로 가지 않으면 하나님 구원 경륜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예수의 피가 그 어떤 죄도 용서하는데 내가 하나님 닮지 않았다고 나를 지옥으로 보내겠는가? 어떻게 생각하는가?
인간은 악하다. 정말 날을 잡아서 이 교회들이 어떻게 하나님 말씀을 외곡 시켰는지 그걸 다 들춰내고 싶다. 얼마나 그럴듯한가? 예수의 피가 그 어떤 죄도 용서하는데 내가 하나님 닮지 않았다고 나를 지옥으로 보내겠는가? 그 죄를 예수의 피가 용서하지 않는단 말인가? 내 쪽으로 보고 이렇게 말을 한다.
반대로 이렇게 말해보자.
예수의 피가 그렇게 가치롭고 고귀하고 위대하다면 니가 예수의 피를 만났는데 어떻게 하나님 말씀을 이루는 쪽으로 니가 못가냐? 왜 그 쪽은 생각하지 않는가?
예수의 피가 그렇게 값어치 있고 그렇게 위대하다면 내 모든 죄를 용서할 만큼의 하나님의 피라면 니가 그 피를 만났는데 어떻게 하나님 말씀을 이루는 쪽으로 니가 나아가지 않느냐? 그게 맞다. 그런데 예수의 피 조차도, 하나님의 피 조차도 내 쪽으로만, 내 쪽으로만 그렇게 끌어다 쓰는 거다. 이게 한국 교회와 세계 교회의 흐름이다.
어떻게 사람이 하나님 닮느냐? 어렵게 생각되는가?
하나님은 못 지킬 말씀 주시고, 죄 발생하면 못 지키지? 못 지킬 말씀 준거야.
못 지키지? 괜찮아 예수의 피로 다 용서해줘~ 그래서 그 은혜, 사랑에 감사해서 하나님께 종속되게 해서 아이고 하나님 감사해요, 뭘 해드릴까요 하나님,
굉장히 그럴 듯하나 이것은 전혀 하나님답지 않으시다. 신답지 않으시다.
하나님은 인간보다 못한 그런 분이 아니시지 않는가~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이용하지 않으시고 우리 가지고 장난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나님 닮게 하시려는 것이다.
하나님처럼 되게 하려고.
영원한 천국에서 같이 살 자를 만드시려고.
그래서 하나님은 다 되게 해 놓으셨다. 되게 해 주시고 우리가 그렇게 하나님 닮도록 그렇게 되게 해 주시려고 하시고 그래서 되도록 다 해놓으셨다. 그냥 안 되게 어렵게 해 놓고 뺑뺑이 돌게 하고 즐기는 분이 아니시다.
너희들 안 되는 거야 그치? 하나님 그러지 않으신다.
하나님 되게 해 놓으셨다.
첫 번째 하나님 형상 우리에게 넣어주셨다.
하나님 형상이 내 안에 있으니 그 형상이 발현만 되면 되는 거다. 내 안에 있다 내 안에. 하나님 닮음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고 내 안에 있다. 그 하나님의 형상이 발현될 수 있도록 우리 안에 영을 넣어주셨다. 우리 영안에 하나님 형상이 담겨있다.
그래서 안 믿는 애들이 명상하고 참선해서 자기 안에 신성이 있다고 하지 않는가~ 그들이 영을 만나는 것이다 영을.
그럼 우리는?
우리 영안에 하나님이 오셨는데. 하나님의 형상을 내 안에 넣어두시고 그 형상을 담을 수 있는 영을 우리 안에 넣어두셨다. 그 영안에 하나님의 형상이 있기에 영만 만나면 발현된다.
그런데 하나님 수준으로 발현되도록 하나님 내 영안에 오셨다. 내 안에 오신 하나님만 만나면 내 영안에 하나님 형상이 발현되는 것이다 하나님으로. 안 믿는 사람은 그냥 영안에 담긴 하나님 형상 정도만 만나는 것이고 우리는 진짜 하나님으로 하나님 형상이 발현된다. 누가 더 하나님을 닮겠는가?
하나님이 내 안에 오셨고 내가 하나님을 만나지만
단번에 하나님으로 가득해지지 않는다.
내 안에 여전히 옛 마음, 세상 것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옴팍 내가 만나지 못한다.
세상을 향한 마음이 너무너무 많으니까.
세상에 놀 것도 많고 즐길 것도 많고 내 믿음이 그 정도가 안 되어서 하나님만 만날 수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죄를 발생할 수밖에 없다.
죄가 뭐가 문제가 되나?
하나님께서 우리가 죄지을 것 다 아셨고 그 과정을 거칠 것을 다 아셨는데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 죄를 다 용서하셨다. 내 죄가 다 용서되었다.
하나님을 닮아 가는데 여전히 하나님을 덜 닮고 내가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데 그 죄가 아무런 문제가 안 되게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내 죄를 다 값을 치루셨다.
다 되게 해 놓으셨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딱 한 가지를 우리에게 남겨 놓으셨다. 하나님께서 다 되게 해 놓으셨는데 딱 한 가지를 우리에게 남겨놓으셨다.
(신 8: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would keep)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지키는지에 would keep을 써놨다. 한국말로도 지키는지 라는 말이 사실 과거형도 아니고 현재형도 아니고 미래형이라는 것을 잘 보면 알 수 있다. 그런데 우리말은 그게 잘 감지가 안 된다.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 지에서 지키는 지가 미래적인 감을 빨리 못 찾는다. 그래서 영어를 써 놨다. 미래적이라는 저 말은 저렇게 지키는 지로 번역해도 되지만 미래에 네가 지킬 것인지 안 지킬 것인지 그걸 알려고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영어를 해보신 분들은 저 미래적인 안에 여러 가지 뉘앙스가 있다는 것을 아시게 된다. 그 명령을 지키려고 하는지를 알려고 하신다로 번역해야 된다. 왜냐하면 그 앞에 니 마음이 어떠한지를 알려고 한다 했다.
알려고 하는 것이 뭐냐 하면 하나님께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계명, 명령을 막 주신다.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하라고 하신 이유가 뭔지 목적을 지금 밝히시는 것이다. 알려고 하신다. 무엇을? 니 마음이 어떠한지. 내가 너 시험해 보는 거야. 그 시험에 목적이 뭐냐 하면 니 마음이 어떠한지. 하나님의 계명을 줬는데 그들의 마음이 이뤄지지 않을 말씀. 아이 씨 이뤄지지도 않겠네, 뭘 이런 걸 지켜~ 그러는지, 아니면 되든지 안 되든지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것을 지키려고 하는 마음보를 갖고 있는 지, 니 마음을 알려고 한다는 말씀이다. 지키려고 하는 지 그렇게 하지 않는지를 알려고 한다 이 말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남겨주신 것 딱 한 가지가 있다.
하나님을 닮도록 다 해놓으셨는데 하나님 해 주시지 않고 우리에게 넘겨주신 우리의 몫 딱 하나가 있다.
우리의 마음보다.
하나님이 주신 저 말씀을 지키려고 하는 마음을 내가 갖느냐? 그런 마음이 내게 있느냐?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알려고 계명을 막 주신다.
어느 정도? 진짜 마음.
진짜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지키려는 마음이 있냐는 말이다.
지키기 어려우니까 물 타고 예수의 피가 내게 있는데, 저거 안 지켜도 다 용서받는데, 당신 예수의 피를 무시하냐고 말하는 이도 있다.
사실 아까 열을 내서 말한 것처럼 예수의 피를 무시하는 것은 그 사람인데.
성경을 보면 우리가 지킬 수 없는 말씀이 수두룩하다.
그건 아까 말씀드린 대로 뺑뺑이 돌고 고생 좀 해봐라 그런 게 아니고 하나님을 닮은 다고 하는 것이 내 힘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으라고 하신 거다.
(신 8: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그러셨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지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닫도록,
아 내 존재 자체가 아직 미완성임 알라고.
나는 안 되는구나, 내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구나를 알라고. 내 힘으로 안 되고 하나님으로 되는 구나! 그래서 하나님 내 안에 오신 것이구나.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이끌어 주시는 것이구나. 하나님으로 되는 것을 깨닫게 하려고. 얼마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둔해서 이것을 깨닫지 못하면 한참 후 에스겔서 가 가지고 바벨론 포로 시대에 명확히 그것을 가르쳐 주셨겠는가?
우리가 자주 보고 오늘도 봤던 에스겔 36:26,27절이 그렇다.
내 영을 너희에게 주고 그래서 너희 영이 새 영이 되게 하고 새 마음이 되어서 니 몸에 있는 굳은 마음들 다 빼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거야. 그러면 너희가 내 계명을 지켜 행하게 될 거야. 그래서 이 뒤에 이스라엘 백성이 저절로 저렇게 되었나? 아니다.
저렇게 되려고 해야 한다 마음이.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그러면 저도 그렇게 되고 싶어요 라고 마음에서 막 꼼지락해야 한다. 그걸 원해야한다. 그런데 그들은 저기서도 실패한다.
우리가 하나님께 부름 받았다. 그러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믿고 있고 하나님 내 안에 들어와 계신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닮게 하는 모든 것은 내 안에 이뤄져있다. 그래서 하나님 닮고 있는가? 하나님 닮음이 안 되고 있다면 여러분 몫으로 되어진 딱 한 가지를 안 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러분의 마음에 뭐가 들어있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을 닮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가?~
어떡해서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내 죄를 모두 사하신 그 하나님의 원함, 그분의 목적, 하나님 닮음을 이루고자 하는 마음의 열심이 있는가? 그렇게 살고 있는가?
어떡해서든지
하나님을 닮아가려고 하는가?
하나님이 여러분을 볼 때 아 쟤는 정말 나를 닮으려고, 쟤한테 준 모든 말씀을 이루려고 정말 마음에서 열심을 내고 있구나~ 정말 마음에서 열심을 내고 있구나~ 하나님이 그렇게 보실 것 같으신가? 그럼 여러분은 하나님을 닮고 있는 중이다.
여러분 저는 의지가 강한 사람이 아니다.
제가 하나님 닮음이 시작되고 있는 단 하나의 이유는 하나님 말씀을 물 타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나님 하신 말씀을 놓지 않고 하나님 살아계시기 때문에 이 말씀은 이뤄져야 되는 거라고 잡고 온 것이다. 그게 우리에게 주신 남겨놓은 딱 한가지이다.
포기하지 마라. 해보니까 안 되던가? 안 된다. 예수의 피를 주셨지 않냐? 너 안 된다.
무능력하다. 능력 있다고 착각하지 마라. 너 세상에서 하는 것처럼 니 의지가 있다고 착각하지 마라. 안 된다. 나로 된다. 그래서 내가 니 안에 들어가 있는 것이다. 나로 살자, 나로 살면 된다. 하나님으로 살면 된다. 그러면 하나님이 내 안에 만나지고 하나님의 그 만나짐이 느껴진다. 하나님의 속성이 내 안에 흐른 것이 내 안에 느껴진다. 그게 새 마음이 되고 새 마음이 흐르니까 새 마음이 흘러서 그냥 그냥 그렇게 살아지는 거다. 욱 하는 것이 힘을 잃고 없어진다. 정말로 없어진다.
그러면 얼마나 좋겠나? 정말 천국이 이뤄진다. 부부관계 속에서 천국이 이뤄진다.
천국이 임했다. 이 땅 여기서 천국에서처럼 무한 행복하게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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