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주님일하심의 역사 2

마음 아저씨 2019. 11. 24. 16:34

우리 부모님은 결혼 9년만에 나를 낳고 내가 돌이 지날 무렵 내게 만큼은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시려 광주로 상광하셨다. 해남에서 광주로 올라올때는 형편이 좋아서 동명동에 집도 짓고 사시다 갈수록 가계가 기울어져 내가 초등학교때는 백운동 꼭대기에 집을 얻어 살았다. 나의 양 외할머니는 무당이셨고 고창 집에 놀러가면 방안에 사당같은 것이 있고 쌀을 던지든지 동전을 던져서 점을 치시는 것을 종종 보았지만 난 그러나보다 했었지 큰 문제되는 것은 아니었다. 나를 이뻐하시고 맛난것도 사주시고 했으니까.

그러다 숭일중학교로 배정이 되면서 매주 성경시간이 있고 교회를 다니면서 내 안에 조그마한 믿음이 생겨났다. 그러면서 아 우리 할머니는 우상숭배하시는 분이구나 하면서 내 마음에서 거리를 두게 되었고 중1때 간식을 먹으면서 기도하는 내 모습을 보시며 애 믿음들어간다, 애 믿음들어가 하시면서 안타까워하시고 엄마를 탓하시던 모습도 떠오른다. 초등학교때까지만 해도 1년에 몇번의 굿을 하시며 돼지코구멍에 지폐를 퍽퍽 찔르는 우리 엄마를 보면서 왜 나한테는 돈을 안주고 저러시나, 그리고 왜 저렇게 꽹과리를 치고 북을 치며 동네 창피하게 시끄럽게 하실까하며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다 중학교 다니며 하나님을 알아가다가 고등학교는 광주고등학교에 배정이 되니 두분다 이제는 그만 교회 다니라고 하신다. 그런데 이미 내 마음은 하나님께 가있었기에 몰래 교회 다녀오다가 들키면 성경 찬송을 불태우시고 도서관 간다하고 교회 가서 성가대하고 있는데 우리 엄마가 예배당에 들어오시면 힘이 쫙 빠지면서 성가대석에서 내려와 까운을 벗고 체념하며 터덜터덜 나가야했다. 지금 생각해도 기운이 빠진다만 사단에 붙잡혀 있었고 이렇게 하는 것이 자식에 대한 사랑이라 믿으셨기에 그렇게 하셨을 엄마의 마음도 지금은 느껴진다. 어느날은 예배 시간에 지금 당장 공산당이 와서 너 예수 믿으면 죽인다! 어쩌겠느냐 하는 메시지를 듣고 집에 와서 곰곰히 고민해봤다. 그리고 결론은 죽자, 주님 인정하고 천국가야지였다. 그러다 고3 후반부에 엄마의 정신이 안 좋아지셔서 아파트에서 큰 소리치고 뛰고 하시는데 너무 창피하기도 하고 아 저런 모습이 미친 사람의 모습이구나를 처음으로 보게 되었다. 우리 아버지는 양 외할머니 오라 하셔서 굿을 해도 아무런 차도가 없었다. 결국 시립 정신 요양원, 나주 정신병원 등등을 전전하시고 조금 호전되시면 집에 오셨는데 금방 상태가 안 좋아지시고 그럼 또 다시 정신병원으로 모셔야하는데 그럴 땐 무섭게 변해서 내 머리채를 잡고 놓아주지 않으시려 했다.  정신병원에 들어가면 독하디 독한 약을 드셔야하는 상황이었으니! 그 과정을 거치면서 엄마에게 복음을 전했고 주님을 알아가시고 우리 아버지도 환경이 안 좋아지시니 결국 주님을 영접하셨고.

결혼하고 나서도 엄마는 서울로 올라가셔서 청량리 정신병원에 수용되었다가 서울 이모에게 연락이 오면 내가 여수에서 올라가서 모셔오고. 그러다 내 나이 34살 때 객사하셨다.

돌이켜보면 우리 엄마는 아들을 바라는 집안의 세째딸로 태어나서 환영받지 못하고 무언가 자신의 힘으로 이뤄내기를 바랐지만 되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나에게 그토록 내 후손계를 이어달라 이어달라 주문을 외우셨고. 이런 환경에서 대학은 참 설리설리 들어갔다. 대학 등록금이 부족해서 사촌형들에게 구걸하다시피 해서 조금 받고 은행대출받아 입학을 했으니 아 내 힘으로 벌어서 대학을 다녀야하는구나 하는 마음이 절로 들었다. 그래서 신문도 돌리고 우유도 돌리고 이것저것 팔기도 하고 노가다도 나가보고 아무튼 돈이되는 것을 벌어야만 했다. 시립합창단도 나가면 그 당시 3만원을 주었으니 십일조 하면 27,000원. 내게는 큰 돈이었다. 그렇게 살아가다 현미 만나서 리죠이스 가자는데 난 돈 벌어야되서 안돼 하다 2학년때 시립합창단 세미나를 하는데 옥인걸 교수님께서 자기 먹고 살라고 예술하는 사람은 저 아래 막걸리집에서 니나노 하는 사람하고 똑같다는 말씀을 하시는데 순간 그건 나다!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 전에 합창단 지휘자께서 불교신자인지라 합창으로 찬불가를 부르면서 들었던 갈등, 이렇게까지 해서 먹고 살아야하나, 하나님 믿는다는 내가 찬불가를 불러야! 이건 아닌데 하며 갈등하고 있었던지라 그래 여기까지 하자! 그만두고 리죠이스 가자. 그 다음은 주님께서 해결해 주시겠지 하고 합창단을 그만두었다. 우리 아버지는 합창단 계속 나가면 안되냐? 전기세도 내야하는데. 아니요 이제는 못하겠습니다 하고 딱 잘라 말씀드렸다. 합창단 단무장께서도 전화로 나오라 하시는데 흔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인생을 살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열심히 리죠이스 다니면서 배운 말씀 공부하고 적용해보고 하다 집에 김치가 떨어진 상황이 왔다. 그래서 하나님께 하나님 김치가 먹고 싶어요 하고 수요예배때 말씀드렸는데 예배 후 이선옥 집사님께서 윤선생, 김치주까 하시는데 소름이 돋았다. 와 내 기도를 들으시고 이렇게 인도하시는구나! 그 후로 목욕비가 없으면 하나님, 떼가 찼어요 하고 기도하면 목욕비를 주시고 차비를 주시고. 그렇게 등록금도 해결해주셔서 3,4학년은 힘든 아르바이트 하지 않고도 졸업을 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도 은혜이다.

해남군 화산면 용덕리 출신의 내가 이렇게 하나님을 믿으며 살아갈 수 있도록 주님께서 만지시고 이끄셔서 우리 현미와 결혼해서 예지, 예솔 낳아 하나님 신앙의 유산을 이어가게 하심에 너무 감사드린다. 이제 우리 현미는 먼저 천국갔으니 나도 신앙 부지런히 일궈서 진짜베기 하나님 아들로 주님 뜻 절로 이뤄드리는 에스겔 36장26,27절 말씀대로 살아가다 주님 품에 안기는 자 되고 우리 아이들도 그렇게 배우자 잘 만나서 신앙의 삶 절로 살아가는 그런 복된 삶 살게되길 구해본다.

여호수아 말씀처럼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다는 말씀이 실제되는 그 삶되게 선하게 선하게 인도하심에 감사 감사드립니다. 주님께 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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