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행 2:32
양육 중 이 말씀을 묵상하는데 너무 감동이었다는 나눔을 듣고
내가 묵상을 소홀히 했구나 싶어 이 말씀을 묵상하는데
이 예수를 에서 이 예수님의 상태가 어떤 상태였나가 묵상되는 거다.
신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시어 사람과 똑같이 사셨다는 발상 자체가 이해가 안 되는 면이다.
어떻게 신께서 이런 생각을 하실 수 있을까?
너희는 나를 섬기고 충성해라라고 말만 해도 얼마든지 가능하신 분인데
어떻게 사람으로 이 땅에 태어나시어 멸시 천대 수치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인내하시며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신다나는 말인가!
말씀만으로도 네 죄를 사하노라 하면 되실 것 같은 분이 왜 도대체 무엇 때문에
저주를 몸소 당하시어 이런 처절하고도 처절한 통증과 수치를 겪으셔야 한단 말인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요 19:30
이렇게 생을 마감하신 예수님의 몸은 그 야 말 로 처참한 상태였던 것이다.
피가 다 빠져나가고 온몸은 상처투성이요 피의 흔적, 못에 박힌 양손과 발, 온몸에 있는 상처들.
객관적으로 누군가 그랬다는 죽지 않았는데 부활했다고 말하는 이들의 말을 근거로 한다 해도
이 상태의 몸이 지금 이 시대의 의학의 힘을 빌은 다 해도 회복되는데 얼마의 시간이 걸릴까?
몇 개월 아니면 1년이 걸리지 않을까?
그런데 이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살리신 거다.
신이 이 땅에 인간의 몸으로 오신 것도 이해가 안 되지만
이런 처참한 몸의 상태에서 부활체로 다시 살아나심도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다.
그런데 증거가 있다 한다.
바로 예수님 제자들의 부활 이전과 이후의 삶의 변화이다.
이 세상에서 한자리하고 싶었고 자신의 목숨이 아까워 예수님 죽으신 후 문을 꽁꽁 잠그고 있었던 그들,
예수님의 못 자국과 찬 자국을 직접 내 손으로 보지 않고서는 믿을 수 없다 했던 도마.
그런데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심을 보고 나선 문을 박차고 나가서 너희가 죽였던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셨다,
우리가 다 이 일의 증인이라고 목숨을 아까워하던 그들이 정 반대의 모습을 보여주고
너희 그렇게 말하면 죽는다 해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부활을 증거하다 죽기까지 했던 제자들의 삶을 보면
예수님은 분명히 부활하셨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예수 부활의 증거라고 말한다.
이에 대한 나의 생각은?
내가 도마였다고 가정해 보자. 예수님이 부활하시지 않았는데 내 목숨을 걸고 예수 부활을 증거할 수 있을까?
당연히 없지. 그렇다면 예수님이 부활하셨고 그걸 도마인 내가 봤기 때문에 이건 증거하지 않을 수가 없는 거였구나.
이 분이 부활하셨다면 예수님은 사람이 아닌 것이고 그렇다면 도마가 고백한 것처럼 나의 주요 나의 하나님이신 거다.
그 신의 신되심을 전하지 않을 수가 없었겠다.
그런데 이 부활을 전해도 가져가는 이가 많지 않다.
왜 그럴까? 실제로 내가 도마나 다른 제자, 예수님의 육신의 동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예수님 당시에 예수님이 부활하심을 예루살렘이 있는 모든 사람은 직접 보았든지 소문으로 다 들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예수 믿는 이와 믿지 않는 이로 갈라지지 않는가?
이건 영적인 문제, 믿음의 문제인가 싶다.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 행 17:31
우리 예수님 분명히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기에 이 부활이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로 주셨기에
이 사실을 믿든지 믿지 않든지와 상관없이 분명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은 올 것이고
그때에 예수님이 부활하심을 믿고 주님과 함께 이 땅에서 살아가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는 분명히 갈라질 것이다.
그날은 분명히 올 것이다.
느슨하게 살지 않고 분명하게 확실하게 우리 주님과 소소한 것도 말씀드리며 주님과 함께 하는 삶 살아가련다.
그래서 우리 주님의 인도하심 따라 하루하루 감사와 기쁨 가운데 하나님 오리지널 디자인의 삶 살아가련다.
그날은 분명히 올 것이다.
주님과 같이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발맞춰 가다 보면 분명히 주님 영으로 가득한 삶 살아갈 것이도
12제자와 예수님의 육신의 동생, 바울처럼 예수님을 증거하는 증인의 삶을 나도 살아가게 될 것이다.
오늘도 그러기 위해 주님과 함께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주님 손 꼭 잡고 살아가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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