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귀있는 자! 그리고 귀빠진 날!

마음 아저씨 2022. 2. 22. 09:44

인생을 살아감은 전혀 다른 생이 있음을 알고 그 생을 준비해감이다. 

귀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당연히 귀는 있지만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어야 본의를 알 수 있고 거기에 합당한 삶을 살아갈 것이다. 

인간은 그 존재 자체가 철학자이다. 

단 한 사람도 예외가 없다. 

학식여부, 재능, 부의 여부와 상관없이 말이다. 

정말로 사람이라는 존재는 너무너무 기가막히다. 

반면 한쪽으로 치우쳐버리면 완전 휘어져서 향방을 모르고 휩쓸려 갈 수도 있다. 

정신차려서 깨어 살고 싶다. 

반듯하게 살아가고 싶다. 

그 기준은 말씀이기에 하나님과 말씀 앞에 서서 내 부족을 보고

감히 다른 이를 판단하지 않고 내 부족만 크게 보이고 그러기에 납작 엎드려 살아가고 싶다. 

하지만 언제든 툭툭 튀어나오는 자기중심성이 내 입장만 헤아리게 하고 나를 세우려 한다. 

귀있는 자이고 싶다. 

반듯한 자이고 싶다. 

주님의 사상, 가치, 기준, 생각과 일치해 가고 싶다. 

그래서 진짜로 주님 닮아가는 자 되게 싶다. 

오늘도 주님 안에서의 삶 살아가길 소망하며 주님께 영광!!!!!!!

 

아침에 받은 글인데 숙연케하고 울림을 준다!

?  귀 빠진 날 - 


친구 생일 
축하 모임을 가졌다

코로나도 있고 해서 
한동안  어울리지 못했는데

친구들끼리 단톡방에서 이야기를 나누다 한 명이 귀 빠진 날이라는 걸 알게 됐다. 

그렇잖아도 다들 
마음은 주저주저하면서도

 몸은 근질근질했는데 
좋은 구실이 생긴 거다.

 모처럼 모여 한잔 했다.

자연스레 생일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갔다. 

“아침에 
미역국은 얻어 먹었냐”부터 

“이제 우리 여생에 
생일이 몇 번이나 남았을까”하는

 쓸쓸한 대화까지 나누다 
생각지 않게 많은 걸 깨닫게 됐다.

쓸데없이 한 친구가 물었다.

“생일을 왜 
귀 빠진 날이라고 부르는지 알아?”

“그러게 코나 
눈 빠진 날도 아니고,

 왜 하필 귀 빠진 날이지?”

...
 
태아는 
머리부터 세상에 나오는데

 산모에겐 그때가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운 순간이다.

 산부인과도 제대로 없던 시절,
 시골집에서 순산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머니들은 해산할 때 
댓돌 위에 고무신을 벗어놓고

 ‘내가 다시 저 신을 신을 수 있을까’
 하고 방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태아는 머리가 
어깨 너비보다 크다. 

그래서 일단 
귀가 보이는 게 중요했다. 

귀가 빠져나오면 
몸통과 다리는 순조롭게 따라나오니
 
출산은 다 한 거나 
다름없다고 한다.

한 친구가 진지하게 물었다.

“그래. 그런데 생일은
 어머니가 가장 고생한 날인데 

왜 생일 축하는
 저희들끼리만 하지?”

결혼을 해서 
아내가 아이를 낳는 걸 보며 

생일의 주인공은 
자기가 아니라는 걸 문득 깨달았다고 한다.

 그 후 그는 생일에는
 꼭 어머니 아버지에게 
미역국을 끓여 드리거나 

맛있는 걸 사드리고 
선물을 드렸다고 한다.

 아버지의 그런 모습을 
보고 자란 그의 아이들도 

자신의 생일에는 
그렇게 따라 한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나니 
결혼 후 내 생일에 부모를 생각한 적이 있었던가. 

어머니가 멀리 계시긴 하셨지만
 아내와 아이들하고만 
즐겁고 오붓하게 생일상을 먹었다. 

어머니는 
오히려 내 생일에는 

가족과  좋은 데 가서 외식하라고 
전화를 하시곤 했는데

 난 정작 어머니에겐 
스웨터 하나 선물한 적이 없다. 

다른 때는 문안 전화를
 곧잘 하면서도 막상 생일에는

 “저를 낳느라고 
얼마나 힘드셨어요”라는
 감사 전화 한 번 한 적이 없다. 

생일은 
내 것인 줄만 알았다.

친구는 생일 아침에 
미역국을 먹는 관습은

출산의 고통을 겪으며 
생명을 주신 어머니의 은혜를 
잊지 말라는 의미라고 말해줬다.

 그래서 귀 빠진 날에는
 자기가 미역국을 먹는 게 아니라, 

귀를 빼준 어머니에게 
미역국을 끓여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 진위는 모르겠으나
 귀는 귀퉁이에 붙어있어서 
‘귀’가 됐다고 한다.

사람이 잘났다고 말할 때 

왜 이목구비(耳目口鼻)가 
반듯하다고 할까.

 눈, 입, 코도 있는데 
왜 귀(耳)를 앞세웠을까? 

귀는 얼굴의 핵심 지점도 아니고 
변방에 달려있는데도 말이다. 

그건 그만큼 귀가 
소중한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에
 맨 앞에 간 거라고 한다. 

늘 남과 세상에 귀를 기울이며
 살아야 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귀엽다’는 단어는 
남의 말을 잘 귀담아 듣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라는 우스개까지 곁들였다.

말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지만, 
듣는 것은 가려들을 수는 없다. 

듣는 것은 
그래서 신의 뜻이라고 한다. 

남이 내 험담을 할 때 
‘귀가 가렵다’는 표현을 생각해 보라

입은 하나인데 
눈과 귀가 두 개인 건, 

말하는 것보다 
듣고 보기를 두 배 하라는 의미라고 한다.
 
공자는 나이 60을 
귀가 순해진다는 이순(耳順)이라 했다. 

이는 원래 무슨 말을 들어도
그 이치를 깨달아 이해한다는 의미이지만, 

무슨 말을 들어도 
사사로운 감정에 얽매이지 않는
 관용이 

진짜 의미라고 한다. 

선현들은 나쁜 말을 들으면 
곧장 달려가 시냇물에 귀를 씻는다 했다. 

난 이순의 나이가 넘었지만 
그 경지에 언제나 도달할 수 있으려나.

늘 내 얼굴 귀퉁이에 붙어있지만 
관심을 갖지 않았던 귀. 

 많은 걸 생각하고
 깨닫게 됐다.


 ?  기분 좋은 아침입니다 !

              만나면 좋고 
         함께하면 행복하고
     헤어지면 늘 그리운 사람...

              사랑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