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모임에서 옆 사람을 그대로 느껴보라 하신다.
편하면서도 뭔가 불편한 그런 느낌이 만나졌는데
옆 사람이 앉은 자리로 이동하여 느껴보라 하셔서 느껴보니
이 분이 얼마나 가족을 위해, 또 공동체를 위해 고군분투하며 최선을 다하시는 그런 마음이 만나지는 거다.
정말 신기한 경험이었다.
다음엔 내 앞에 앉아 있는 분의 모든 말을 들어주는데 어떤떤 비난, 평가 없이
모든 걸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들어주라 하시는데
그것이 되기 위해선 먼저 나 자신에 대한 마음이 하나님이 나를 바라보시며 기뻐하시는 그 마음으로 보라 하신다.
스바냐 3:17절 말씀처럼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이 말씀을 받아오려는데 내 안에 부정적인 아주 불편한 생각,
뭔 나 같은 것을 하나님께서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나를 잠잠히 사랑하시겠어?
뭔 나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실 리가 있나?
이젠 사라진 줄 알았던 짜잔이가 올라온 거다.
하나님을 마음 다해, 목숨 다해, 뜻 다해 사랑하지 않는 나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사랑하신다고?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라는 사단의 말이 온 마음에서 올라와 저항하는 거다.
요즘 하나님 마음을 느끼며 살고 싶은데 그 마음이 안 느껴지는 거다.
나를 향하신 아버지의 사랑
내 안에 거하시어 깨어있든지 자든지 늘 나와 함께 살기 원하시는 아버지의 그 마음이 잘 안 느껴지는 거다.
그것이 속상한 거다.
나도 주님 마음 풍성하게 만나면서 주님과 함께 뭘 하든 같이 동행하고 싶은데
그게 안되니 너무너무 좌절스럽고 나 자신이 못마땅한 거다.
그런 나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리가 있어? 그럴 리가 없지~ 이런 마음.
그런데 이 생각이 하나님 적일까?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이 말씀을 하신 하나님 보시기에 나의 이런 반응은 어떠할까?
내 마음은 하나님께 너무 죄송한 거다.
주님 이렇게 사랑하심에도 불구하고 그 사랑을 느끼지도 못하고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지 못함이 너무너무 죄송한 거다.
그럼 우리 주님은 나같이 죄송해하고 못 느끼고 못 사는 자에 대해 어떻게 대하시는가?
제3자 입장에서 나 같은 이에 대해 나는 뭐라고 말을 해 줄까?
에이 쓸모없는 자식 같으니라고~ 이렇게 말씀하실까?
탕자의 회개가 떠오른다.
살아있는 부모의 유산을 받아 흥청망청 다 탕진하고 이젠 쥐엄열매나 먹는 처지가 되어
아들이라 감히 불릴 자격도 없으니 종의 하나로 받아주시라고 왔던 그 탕자에게
먼발치에서 집 나간 자식이 언제 돌아오나 기다리시다 돌아오는 아들을 보고 온몸으로 반겨주시고 환대하신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
그 사랑으로 나를 바라보고 계실 것이다.
나 같은 자의 죄책을 속량하시기 위해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고
이젠 죄책으로부터 완전히 자유하라고!
급하게 마음먹지 말라고.
하나님이 쓰신 사람들은 이런 과정을 겪었다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오늘은 스바냐 3:17절 말씀을 묵상하고 싶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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