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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들 태어난 날인 1995년 5월 10일 여천 산부인과!
예지를 광주 산부인과에서 낳았는데 갓 태어난 아이들을 영아실에 놔두고 우유먹이고 애는 계속 깨고 울고~
그래서 둘째가 태어나면 바로 엄마 아빠 옆에서 재울 수 있는 곳을 알아봤더니
그당시 우리가 살고 있는 여천 산부인과였다.
제왕절개 수술후 간호사가 마치 닭을 잡아오듯이 울 아들의 다리를 잡고 머리는 아래로 내려뜨린채
김현미 산모의 아들입니다 하는데 기분이 좋으면서도 그 장면을 보면서 뭔 저런 간호사가 있대니~
순간 화가 났지만 좋은 마음에 어 예솔아! 하면서 환하게 웃던 장면이 떠오른다.
난 너~무 행복해서 누가 말을 안 했음에도 그날이 수요일이라 혼자 수요예배 가선
예배후에 여천제일교회 성도님들께 저 아들 낳았습니다 라고 함박 웃음지으며 자랑했던 장면도 선명하게 떠오르고.
우리 딸, 아들 키우면서 정~말 행복했다.
그래서 우리 현미가 그랬다~
우리 애들이 이렇게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준 것만으로도 앞으로 받을 평생의 것을 다 받았다고!
늘 집안엔 찬양과 음악 소리, 웃음소리가 거의 끊이지 않았다.
여수에서의 일상이 그래서 더 기분 좋은 잔상으로 남아있는 것 같다.
주말엔 요트장, 만성리 해수욕장, 흥국사로 / 여름엔 섬진강, 광양 어치, 지리산으로 놀러가서
모래놀이도 하고 튜브도 타면서 현미는 부지런히 전도 짖어주고 도시락 먹으면서 즐거운 시간들을 보냈었다.
그러다 우리 애들은 성장해 가는데 더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나의 삶으로 보여주지 못하고
하라, 하지마라고 했던 수많은 시간들은 정말로 아쉽고 미안함으로 남아있다.
그 속에서도 꼼지락하며 중심을 세워가려했던 우리 아들의 마음을 알기에
이젠 더 울 아들을 믿어주며 주님 안에서 영으로 살아가는 우리의 남은 생을 꿈꿔본다.
우리 현미가 말했던 것처럼 우리 아들, 딸은 잘 살게다.
종종 예지와 우리 아들의 신부는 어디있을까?~ 얘기해본다.
내가 현미를 만난 것처럼 너무도 가까이에 있는데 몰라보고 있지는 않을까?~
아니면 예지가 드로를 만난 것처럼 예지가 주님 앞에서 꼼지락을 해 간 후 기가막힌 주님의 때에 만나게 하시는 걸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데 정말 맞춤형 신부감이 올 것을 기대한다.
이젠 정말 육과 혼으로는 안된다는 것을 온 삶으로 알았기에 영으로 살아가려 꼼지락하고 싶다.
그 길만이 우리 모두를 살리는 참 구원의 진리이기에 그렇게 살아가는 우리 가족되길 소망하고 또 소망한다.
하나님 선명하게 살아계시기에 그 아버지 앞에서의 중심 세우며 믿음으로 살아감으로
우리 아들의 남은 생이 어떻게 주님으로 인해 찬란하게 열매 맺어갈지 정말로 기대가 되고 설렌다.
와~ 이런 기분은 처음이다. 눈물나게 감사하고 소망되어진다.
아버지여! 주님 선하심으로 만지시고 이끄심에 감사 또 감사드립니다.
더 주님 신앙 선명하여져서 우리의 남은 생이 주님으로 꽉찬 생 되어 천국을 풀어내는 자의 삶으로
이끄시길 소망 또 소원합니다. 아멘아멘. 감사합니다. 주님께 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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