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예전 선민교회 엄정숙 집사님 지금은 엄정숙 선교사님이 현미 소식을 늦게 들으셨다며 순전히 나만을 만나기 위해 서울에서 내려오셨다. 그 분 역시 50세에 남편을 보내셨고 그 후 삶이 간증이신 분과의 만남이라 도전이되고 위로가 되었다. 평소 현미가 맛나게 먹었던 롯데마트앞 청원모밀(?)에 가서 모밀 소바와 온모밀을 먹으며 자신의 살아온 스토리와 지금 내 마음은 어떨 것이다를 대략 말씀하시는데 다 공감이되었다.
남편이신 정중권 집사님께서 신장 투석중 신장이식을 원하셨고 서로 주고 받는 시스템으로 하기로 결정한 후 엄선교사님 자신이 다른이에게 신장을 이식해주기로 하고 남편인 집사님께서 먼저 이식을 받기로 했다는 말씀을 들으며 그래, 그러셨겠다. 나같아도 만약 현미를 위해 신장이 필요하다면 내 신장 다른이에게 주고 현미 받게 하겠다 하는 마음이 들었는데 참, 우리 현미 그렇게라도 할 상황이었다면 참 좋겠다는 마음이 드니 또 아쉽고 눈물이 난다. 그 수술 과정 중 정집사님께서 B형간염 보균자이심을 알고 약이 나왔으니 이제 이식받아도 된다고 전대에서 말씀하셨는데 수술 후 이 약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자신은 남편 수술 후 다른 이에게 자신의 신장을 이식해주는 수술을 받고 와서 보니 남편 얼굴이 노랗게 부어오른 것을 발견하고 이리저리 알아본 후 이건 의료 사고다 하고 고소하려했는데 기도중 아 이건 하나님이 하심이다. 하나님께서 원하신다면 누가 어찌됐든 살리셨을 것이고 아닌 건 주님이 데려가심이다 하시고 하나님 섭리에 순복하기로 하셨단다. 아! 나중 정집사님이랑 같이 10년 가까이 치료받았던 아산병원에 갔더니 담당의가 이 중요한 수술을 왜 전대에서 받았냐고, 이 약 처방을 안 받았느냐고 화를 내셨다는 것을 보면 분명 의료사고라 할 수 있음에도 하나님의 섭리라고 받으심이 하나님께서 내게 준 메시지로 들렸다. 현미 단 한방의 항암으로 내가 데려간 거다, 너와 예지 예솔 참신앙 되게 하고 내 사랑하는 마음교회 자식들 하나님의 참 자녀되게하려는 나의 뜻, 나의섭리였단다 라고.
정집사님께서 너무너무 신장 투석이 힘들어서 주무실때 내일은 눈 뜨지 않게 해달라 기도했는데 다음날 눈이 떠지면 하루 살기가 너무 힘들어 원망스러워하시다 아산병원에 가서 신장이식 수술 받아도 된다 했을때 엄선교사님께 당신이 신장이식 수술 주고받기로 한다는 말을 듣고 당신과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게 되어 마음이 회복되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시면서 하나님께서 하신다면 전대든 어디든 하실 것이다 하고 전대를 스스로 선택하셨다는 것이다. 아내의 사랑의 선택이 남편 신앙을 회복케 하고 그 중심이 하나님께 향하게 하는 통로가 되었던 것이다. 그 후 앞으로 3개월 시한분 선고를 받고 한 2주간은 등을 돌리고 우시며 기도를 하시더니 떠나시기 얼마전부터는 한 사람씩 불러달라 해서 그 분과 만나 자신이 부족한 것이 많았다, 미안하다, 잘못했다 하시면서 화해, 회복을 하셨다는 것이다. 이런 면이 사형수와 닮은 모습이구나 싶어지면서 나 역시도 언제 천국갈 지 모를 인생인데 하루하루 주님 인도받는 삶 살아야겠구나 싶어진다.
이런 저런 얘기 나누다 정집사님이 공무원이셨으니 연금 받으시겠네요 했더니 아니요 일시불로 받았는데 한푼도 없다 하셨다. 선교사님께서 유아교육 전공을 하신지라 연금을 일시불로 타서 땅을 사서 유치원을 하기로 하고 남편 장례치르느라 남동생에게 통장과 도장을 맡겨놓았는데 그때가 IMF가 터진 때였단다. 그 당시 남동생이 무슨 증권 지점장이었고 고객들의 투자비를 갚느라 자신의 집, 처가, 이 돈 저 돈 다 쓰다가 결국 누나의 그 돈까지 써버리고 난 뒤였다는 것이다. 참 착한 동생이었는데 상황이 그렇게 몰라가서 선교사님은 이제 교회로 가셔서 나 어떻게 살아요, 어떻게해요 하고 며칠을 기도하는데 순간 아 아무것도 의지하지 말고 주님만 의지하라고 주님이 말아가신 거구나, 그럼 하나님이 가져가셨으면 앞으로 남은 인생 주님께서 내 생 책임지실거라 생각하니 그렇게 마음이 편해지시더란다. 참 하나님을 진짜로 믿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믿음의 모습이다.
나중 선교사로 나가기로 훈련을 받았는데 아들 주명이가 걸려서 하나님 주명이가 장가갈때까지만 같이 있으면 안되요 했더니 네 아들 이름이 뭐니? 그때 태명이었던 이삭이 떠올랐다. '웃음' 자신들에게 웃음이 되기를 바란 아들이었는데 그 질문을 받았을 땐 아브라함이 제단에 바쳤던 이삭이 떠오르셨다. 주님께서 네가 아들과 함께 있으면 뭘 해 줄 수 있니? 밥하고 빨레하는 정도였는데 주님께서 나는 모든 걸 줄 수 있다. 그 아들 내게 맡기지 않겠니? 하는 마음을 주셔서 좋습니다 하고 태국으로 가려고 준비를 했더니 한동대 국제학교 선교사 자녀들 케어하는 곳으로 가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억지로가 아니라 나의 동의를 구하신 후 그 다음 일을 진행하시는데 무섭게 훈련시켰다 하셨다. 아들이 너무나 매몰차게 엄마에게 무정하게 대하는데 화가 날만큼이셨다 하셨다. 하나씩 하나씩 의지할만한 모든 사지를 자르시어 주님만을 바라게 하시는 주님이 만나졌다. 최종 목표는 하나님을 닮은 참 자녀삼으시려는 아버지의 마음말이다.
식사 후 현미 납골에 가셔서 같이 기도하시고 정집사님 산소에 가셔서 풀도 뜯으시며 남편에 대한 애잔함을 표현하시면서 위의 내용들을 말씀해 주셨다. 요즘은 제2의 IMF가 터진다는 소식이 들리니까 남은 얼마의 돈을 가지고 금을 사야하나 달러를 사둬야하나 하면서 마음만 분주했다면서 언젠가 정집사님이 딱 한번 목소리로 당신 아직도 욕심 안버렸어 하셨는데 그때 정신이 퍼쩍 났다 하셨다.
집에 와서 잠깐 쉬신 후 저녁 먹으러 가는 길에 자신이 남편 보내시고 난 후 도움받았던 책 헨리 나우웬의 거울 너머의 세계와 또 한권, 그리고 예지와 예솔의 훗날 아내에게 줄 지갑을 선물로 주고 가셨다. 현재 선교하시는 기관에서 나온 메거진 두권과 함께. 그러면서 말레이시아 어떤 선교사님도 아내를 먼저 보낸 후 선교사님을 누님으로 모시면서 속얘기를 다 하신다면서 앞으로 누님으로 알고 지냈으면 좋겠다 하시면서 가셨다. 세상에 17살차이가 나는 누님이신 것이다. 내 사촌형이 75세, 76세여서 누님으로 여기는 건 문제가 아니지만 그래도 늘 어린 대학생때 집사님, 집사님 하며 따르던 분에게 누님이라고 칭하기가 어려운 건 사실이지만 그렇게 마음으로 애틋하게 챙겨주고 싶어하시는 마음이 들어서 지금도 눈물이 핑 돈다. 누님 말씀하신 것처럼 생각나면 울고 마음에 담아만 두지 말고 무엇보다 주님으로 부터 위로를 받으며 살아가리라 마음먹어본다. 그리고 주님께서 이렇게 저렇게 인도하신다고 하셨다.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