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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방사모님!

마음 아저씨 2020. 11. 4. 10:51

방사모님과 안지도 벌써 30년이 넘어갔다. 

우리 현미따라 리죠이스에 들어갔을 때 이쁘장한 누나가 있었다. 

청아한 목소리로 옥구슬같이 노래하는 옥이 누나도 있었고. 

이 이쁘장한 누나는 얼마 안있어 발령났다고 리조이스를 떠난 것 같은데

규훈이형이랑 결혼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나와는 많이 친분이 있지 않았지만 

와~ 규훈이 형하고 결혼한다고? 성공했네~ 축하해요!!!

금식기도까지 하면서 친정 부모님을 설득해서 성공했다했고

나도 그 영향을 받아 현미와 결혼하는데 도전을 받았던 것 같다. 

현미와 같이 서울에 올라가서 규훈형집에 갔는데

쪼끄마한 방 하나에 피아노가 떡하니 버티고 있었고

그 위엔 짐이 한 가득 있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니 반가워하면서도 뭔가 어두운 구석이 있었던 것 같은데

결혼 후 심각한 우울증으로 힘들때였구나 여겨지니 애처로운 마음도 든다. 

그러다 광주 라인아파트에 살다 대주아파트로 이사를 왔고 

우리도 그 즈음 대주 아파트를 사놓고 여수에 있다가

장인 어른께서 목회를 그만 두셨을 때 본격적으로 주일에 마음교회로 다니게 되었다. 

현미는 광신대와 호신대 출강하느라 여수 집에서 광주로 올 때 

삼성아파트 상가 교회안의 쥐알통만한 사택에 와서 쉬고 가곤 했는데

인빈이 누나와 얘기 나누고 광신대 출강갔다 올때까지 

아침에 먹은 그대로 설겆이가 되어있지 않았다 했었다.

참 말도 잘하고 기억도 잘 하시는 분이다. 

전혀 모르는 사람과의 잘못 걸려온 전화도 한시간 이상 하시는 대단한 능력자이고

통화로 2,3시간 한 후 자세한 얘기는 만나서 하자~에 해당하는 그런 분!

나와 현미에게 있을 수 없는 삶을 살아가신 분.

그랬기에 규훈형하고 살기가 얼마나 폭폭하고 힘들었을지 미루어 짐작이 가능하다. 

규훈형은 규훈형대로 한숨만 팍팍 나오고 말도 섞기 싫고 정말 지옥처럼 살았을 것 같고~

그런데 지금 저렇게 천국되어 살아간다는 것은 정말로 주님이 하셨습니다 외엔 다른 답이 없다. 

삼성아파트 상가내 교회 시절 이런 저런 프로그램들이 많았는데 

규훈형이랑 인빈이 누나랑 영 관계가 불편해 보여서 

내가 어떤 제안을 형에게 했던 것 같고 그 후 서로 연습하려 하셨던 것 같다. 

여수에서 광주로 올라가면 식구도 많고 집도 협소한데 뭔가 묵을 것을 차려 주신다.

음식 솜씨는 훌륭하다. 

규훈형이 이건 맛이 어떻고 저건 어떻다라고 피드백을 해줘서 더 그런 것 같고. 

하지만 자신이 계획한 모양과 맛대로 음식이 나올때까지

옆에 있는 사람은 기다려야 한다. 

물론 기다린 만큼 맛은 훌륭한데

그때까지 기다리다 보면 배가 고프다못해 꺼져버릴때도 있다는 것. 

여천제일교회 샤론 성가대 지휘를 하고 있을 때

규훈형을 강사로 초빙했는데 

그때 같이 좋다고 내려왔는데

지금도 그렇지만 늘 설교에 예화로 등장하는 인물이 우리 방사모님이셨다. 

좋은 것은 거의 없고 부족한 점의 예로 등장했던 우리 사모님!

자기보호적인 면도 있었겠지만 제가 그렇습니다, 죄송합니다 라고 표현했던 훌륭하신 분.

방사모님 아버님께선 초등학교 선생님 출신 장로님이셨는데 대개 호인이셨다. 

언젠가 초등부 여름캠프 인솔하러 출발할 때 나를 불러서 봉투를 주셨던 분

그런 아버지 밑에서 막내로 자라면서 오야 오야 다 받아주셨기에 수용선이 무척이나 낮은 분이

수용선이 무지하게 높은 규훈형하고 살아가는 것은 인간적으론 정말 죽음이었을 것이다. 

아마 방사모님을 좋아하는 형제들도 많았고

그런 분과 결혼하여 그렇게 인간적으로 채워줬더라면

우울증을 겪지 않고도 잘 살았겠지만

지금처럼 자신의 인간적이고 부족한 모습도 모르고

좋은게 좋은 것이라고 살아갈 수 있었을텐데

정말로 아버지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으로 인하여

규훈형과 결혼해서 계속 깨지고 깨지면서

지금의 방인빈 여사로 성장하고 있음이다. 

 

현미 아프다는 소식 듣고 정말로 지성으로 음식도 챙겨다 주셨다. 

하루에 몇번씩이나 와서

이것 먹어보라 하고 또 들고와서 먹어보라 하고~

그런데 현미와 얘기하기를 좋아하다보니 한번 오면 이야기를 길게 하셨다.

그래서 현미는 그 에너지를 힘들어 했고. 

현미 떠나기 일주일 전인가 복수가 차니까 그것 빼내준다며 된장을 가져와서 단식원에서 하듯 

무엇이라도 보탬이 되려 했던 분이다. 

현미 천국 가고 나서 나와 예지 예솔 먹으라고 이것 저것 챙겨오시고

예지 드로와 만날때는

드로를 혜솔이 짝으로 염두에 두었는데

규훈형이 드로는 예지한테 더 맞을 것 같다고 예지 소개해줬을 때 

마음이 많이많이 힘들었을텐데 소개해주고

결국 예지와드로가 결혼한다니까 누구덕이냐면서 하하하하 웃었던 분. 

드로와 예지 결혼 축가를 예솔이가 작곡한 후

엄마의 마음을 담아 부르실 분으로 인빈이 누나를 컨택해서 

비밀 절대 비밀로 하자고 부탁을 드렸더니

악보가 없어서 노래 익히기가 어렵긴 하지만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하고 쿨하게 받으신 분.

혼자서 이어폰끼고 밤에 혼자 노래하고 있으니까 혜솔이가 뭔 찬양을 이렇게 늦은 시간에 하냐고,

예지 결혼식 장 갈 때 화장좀 잘 해 주라니까

엄마는 50명 인원제한이라 못 들어가는데 왜 이렇게 화장을 하려 하냐고,

원칙을 지켜야지 엄마 마음대로 결혼식장 안으로 들어가면 안된다고

일장 훈시를 받으면서도 아무말 않고 비밀을 지키신 분. 

라붐홀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결혼식장 신랑신부가 입장하는 길이와 폭도 미리 보시고

우리 교회 예배당에서 리허설로 걸어가면서 축가 연습도 하시고

결혼식 당일엔 직접 신랑신분 입장하는 곳을 거닐다가 

예식장 관계자로부터 거긴 올라가는데가 아니라는 핀잔도 받으면서까지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라는 약속을 지키신 분.

결국 축가할 때 한복을 예쁘게 차려입고

마이크 들고 신랑신분 입장하는 그 통로를 걸으면서

축가를 부르고 오니까 

혜솔이를 비롯해서 가족들이 가장 기겁을 하였고

예지야 부르며 마음으로, 정말 마음으로 불러주셔서

우리 현미의 마음이 우리 예지와 드로에게 흘러들어가게 해 주시고

유튜브를 통해 보신 많은 분들이

한복입고 축가하신 분이 누구시냐는 질문을 많이 받게 하신 우리 방사모님!

드로와 예지 결혼 후 친정 집에 온다고 음식을 음식을,

한상 차고 넘치도록 해 오셔서

현미의 부재때문에 받지 못할

장모님의 사랑을 대신 차고 넘치게 전달해주신 분.

우리 예솔이 생일  때 먹고 싶은 것 뭐냐고 물으시고

음식 가지고 오셔서 축하해 주신분.

또 또 눈물이 난다. 

오늘 이 훌륭한 사모님이 이 땅에 태어나신 날이다.

그래서 이렇게 카톡을 보냈다. 

아이코 우리 방사모님! 생축드리요~ 

많은 세월동안 함께 하면서까지 적으려는데 눈물이 핑 도요. 

감사하요 정말 정말 감사하요. 

우리 현미있을때도 지성으로 함께 해주었고 

우리 예지 시집갈때도 힘든 마음이었을텐데도 

주님 마음 일구며 예지 온마음으로 축하해주고 

축가도 리허설까지 하면서 불러줘서 너무너무너무너무 감사하고 감사하요. 

우리가 안지 벌써 30년이 넘어가네요. 

아직도 우리 현미가 함께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지 않을때가 있지만 

주님 주신 공동체 허락하시어 주님 닮아가는 구원의 경륜을 이루며 살아가는 

꼼지락의 장을 허락하심에 감사감사드리요. 

앞으로 얼마나 함께 할지 모르지만 우리 주님으로 꽉차고넘쳐서 

천국풀어내며 더더더더 하하하하 웃으며 주님 마음 시원케하는 우리가 되어가십시다. 

다시한번 우리 인빈이 누나의 생일을 온 마음으로 축하 축하하며 사랑하요!!!!!!!

 

아버지 하나님!

우리 방사모님 생일을 맞이하여

지난 30여년 간을 추억하는 귀한 시간 보내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남은 생동안 믿음의 중심 세우고 주님 앞에서 꼼지락해 감으로 

정말로 주님 닮아가는 구원의 경륜 이룸으로 

이 땅에서부터 주님을 정말로 주님으로 모시고 

천국풀어내는 삶 살아가는 우리 모두 되도록 

우리 방사모님과 가족되도록 이끄시고 또 이끄시옵소서. 

아멘아멘 감사합니다.

주님께 영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