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2020년9월20일 주일 설교 앞부분

마음 아저씨 2020. 9. 27. 20:36

2020920일 주일 설교

35년 동안 학생 때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교회를 회복하라는 그런 불같은 마음을 주신 이후 하나님 인도 받아 오면서 알게 된 것 하나는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은 다 이뤄지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말씀은 다 되어지게 되어있다. 안 되는 것은 그것을 가로막고 있는 요인을 알고 그것을 하나님께 내려놓으면 다 되게 되어있다.

9:4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

앞 내용을 보면 안식일에 예수께서 소경을 고쳐주셨고 이로 인해 논란이 일어납니다. 그 다음에 예수께서 눈뜬 소경을 만나서 하신 말씀이 이 말씀이다.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 자기가 죄인임을 아는 자는 죄 용서를 받고 자기가 죄인임을 알지 못하는 그 자는 죄 용서를 받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구원의 여정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말씀입니다.

9:13하반 절 말씀과 같은 의미의 말씀이지요.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모든 사람이 다 죄인인데 누가 의인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자기가 죄인 인줄 모르고 스스로 착각하는 자들이 있는데 예수님은 그런 자를 부르러 오신 게 아니고 자기 죄를 인식하고 인정하는 그 사람을 부르러 오셨다는 거지요. 그래서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자격 하나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자기가 죄인임을 아는 것입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인식하고 아는 이 원리는 구원의 시작일 뿐 아니라 하나님을 닮아가는 구원의 여정에서도 굉장히 중요한 단어입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계속 인식해 가는 자가 하나님을 닮아갈 수 있습니다.

 

3:7아래를 보면 선악과를 먹은 이후 사람들의 변화들이 나옵니다.

7절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사단이 말한 대로 눈이 밝아졌는데 쓸데없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벗은 것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서 치마를 삼았습니다. 즉 치마를 만들어서 자기의 벗은 것을 가렸습니다. 벗는 것이 수치라고 여겼기 때문에 치마를 만들어서 가렸지요.

이게 선악과를 먹은 사람의 첫 번째 변화입니다.

자기 수치를 가리기 시작했습니다.

8절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숨었습니다.

선악과를 먹은 죄 지은 사람의 변화 두 번째입니다.

자기의 죄로 인해서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숨습니다.

지금도 그렇지요. 하나님께 죄지으면 하나님께 나오기 싫지요. 심지어 예배도 나오기 싫어지지요. 예수께서 그러시잖아요. 내가 온 것은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그건 예수님을 만날 때의 조건일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 부름 받고 하나님의 자녀 된 이후에 하나님을 닮아가는 그 구원의 여정에서 똑같은 원리입니다. 하나님 항상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죄 인정하고 와! 니 죄 그대로 와! 가리지 마, 가리지 마~ 그대로 와.

숨지 마, 숨지마! 인간은 참 어리석어요. 숨은 다고 하나님이 못 봅니까?

숨지 마~ 더러운 모습 갖고 그대로 와!

그런데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숨습니다.

9절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그러니까 아담이 대답합니다.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벗은 것이 계속 문제가 되지요.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죄를 범한 사람들의 세 번째 변화 두려워하는 마음이 일어납니다.

부정적인 정서가, 두려움이라는 부정적인 정서가 일어납니다.

11절 이르시되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12절 아담이 대답합니다.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줌으로 내가 먹었어요. 여자에게 탓을 합니다.

선악과를 먹은 네 번째 변화 탓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해서 그걸 먹게되었니 라고 물으시는 게 지금 아닙니다.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네가 먹었느냐?

그럼 대답은요? 아니요. 안 먹었어요 든지, 네 먹었습니다 그걸로 끝나는 거지요.

그런데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다고 여자에게 탓을 합니다.

이렇게 탓하는 이게 굽은 것이고 어려운 말로 자기보호라고 합니다.

어떤 분들은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아니 맞는 말이잖아요. 여자 그 사람이 줬기 때문에 먹는 게 아니에요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데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은 많이 굽어있는 것입니다. 많이 굽어있기 때문에 굽은 것이 안 보여요. 선택은 내가 한 것이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은 내게 있는 것입니다. 여자가 준다고 해서 다 먹는 게 아니라 이 말입니다.

여자가 줬어도 안 먹을 수 있지요. 그러나 먹는 선택을 내가 한 것이지요. 여자가 줬기 때문에 내가 먹은 게 아니란 말이에요. 그래서 니가 먹었느냐 라고 여호와 하나님이 물어보실 때에 내 먹었습니다. 이게 반듯한 반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