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8월23일 주일 설교

마음 아저씨 2020. 8. 25. 16:11

어제는 주일 설교를 녹취했다.

너무 소중한 말씀을 남겨서 보고 또 보고 그래서 내 안에 계신 주님을 만나야지~ 그래서 내 안에 계신 주님 말씀대로  살아가는 영의 삶 살아야지 하는 마음으로~

 

2020823일 주일 설교

믿음을 키워갔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유대인에 대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구약의 유대인들은 하나님께 특별히 택함받은 선민이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갖고 있었지요.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서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났고 그 뒤 예수님이 오셨을 때 유대인도 똑 같았지요. 그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여전히 가지고 있었으나 하나님의 의도를 밝히는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잘못된 옛 가르침에 머물러 있다가 메시야가 오셨는데 그 메시야를 영접하지 않고 버리는 우를 범했지요.

사람이 이래요.

사람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즉 하늘의 말씀을 이 땅에 있는 사람에게 주실 때 이 땅의 사람의 언어로 주셨는데, 우리는 이 언어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하는데 사람은 사람의 글자를 보는 것처럼 이 성경을 보고 하나님의 본질의 의도를 놓치는 그래서 잘못된 길로 빠져 나가는 그런 우를 범하는 거예요. 이게 사람이에요 지금도 똑 같아요.

아마 유대인들은 그렇게 이야기할 거예요.

구약의 메시야에 관한 많은 예언을 봐라. 다 다윗왕의 후손으로 온다하지 않았느냐?

그런데 예수는 봐라, 초라하게 왔지 않느냐? 다윗 왕처럼 와야지, 저렇게 초라하게 온 사람이 무슨 메시야냐? 이렇게 이야기할 거예요. 그쵸? 예수 그리스도가 고난 받는 종으로 온다는 말씀은 아주 작은 부분이에요. 세밀하게 보지 않으면 놓칠 수 있는, 그들은 억울하다고 이야기 할 수도 있어요. 이사야 53장의 고난 받는 종의 메시야 예언을 가지고 그 많은 다윗 왕 후손의 메시야로 이해했어야 하는데 그들은 반대로, 그 많은 다윗 왕 후손이라는 메시야의 예언을 가지고 보니까, 고난 받는 종의 예언은 안 맞으니까 버렸지요.

지금 우리도 똑 같아요.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가지고 있으나 정신 차리지 않으면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의 본질의 의도를 놓치고 잘못된 길로 갈 수 있어요.

예수님이 사마리아 비유에서 이렇게 말씀하시죠. 어떤 율법교사가 와서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겠습니까?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고 그가 대답한 후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죠. 이를 행하라. 이를 행하라 했어요. 그러니까 율법교사가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굽니까 하니까 예수께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들고 또 이렇게 말씀하세요. 이와 같이 하라. 이 하라는 말은 행하라는 말이거든요. 예수님께서도 그렇고 신약의 많은 말씀들이 구약은 말할 것도 없고 행하라고 말씀하세요, 행하라고. 그런데 이 말씀을 사람식대로 이해를 한단 말이죠. 행하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의도가 뭔지를 파악하려고 애를 써야하는데 그러지 않고 그냥 사람식대로 이해를 했어요.

우리는 행하라고 하면 의지의 노력을 생각하지요. 아 행하려면 내가 노력해야지, 의지를 발동해야지 이렇게 생각한단 말이죠. 사람의 이해지요. 이 이상을 생각할 수 없어요.

행하라는 하나님의 의도 첫 번째는 성경에서 행하라는 명령을 주신 첫 번째는 너희가, 너희 사람이 육체로는, 너희의 힘과 의지로는 하나님 말씀을 지킬 수 없어 라는 것을 알도록 깨닫도록 하려는 거예요. 몸과 육체라는 단어가 성경에 쓰이는데 몸이라는 말은 흙으로 만든 이 몸뚱아리를 몸이라 해요. 육체라는 말은 흙이라는 소재로 만든 이 몸뚱아리에 세상 것들이 들어와 물들어져있는 즉 세상의 죄 성에 물들여져있는 몸뚱아리를 육신, 육체라고 이야기를 해요. 이 육체를 갖고 있는, 이 몸에 세상 것들이 물들여져 있어서 욕구적인, 세상적인 추구가 가득 있는 이 인생은 하나님 말씀을 지킬 수 없는 거예요. 이걸 깨닫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라고 말씀 하시는 거예요.

로마서 7장이 이를 잘 말씀해주는데 4절에 보면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했으니, 이 말씀이 너무너무 중요한 말씀이에요.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했다. 즉 율법과 우리는 아무 상관이 없다 이런 말씀이지요. 행한다는 계명과 우리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말씀 이지요. 이 앞에 죽은 남편과 아내의 비유가 나오는데 남편이 죽었어요. 남편이 살아있을 때 이 아내는 남편과 관계 속에 있기 때문에 그 남편과의 법에서 벗어나지 못하지요. 남편이 죽었어요, 그러면 자유 하잖아요. 그러면 다른 남자와 결혼할 수 있다 이 말이에요.

그 비유를 앞에서 이야기해요. 그리고 저렇게 말씀하신 거예요.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했다. 율법과 아무 상관이 없단 말이에요.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는 말씀과 아무 상관이 없는데 저 말을 이해를 못해요. 분명히 그러잖아요.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했다, 다시 반복하지요. 무슨 말이라구요? 율법과, 해라 하지 말아라는 이 계명과 아무 상관이 없다구요. 6절에서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얽매였다는 저 번역은 좀 센 번역이에요. 그냥 가지고 있다의 강조. 굳게 붙잡고 있다, 확실하게 소유하고 있다는 것의 수동형이에요. 결혼을 했으면 배우자에게 함께 매어있는 거지요. 제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어요. 그러면 하나님의 법에 굳게 붙잡혀 있지요. 붙잡혀있다는 저 수동형은 약하게 이해를 해야하는데. 내가 하나님이 나를 율법에 확 이렇게 해 놓으신 게 아니고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까 내가 하나님의 법을 받고 하나님의 법을 내가 소유하고 있잖아요. 강하게 하나님의 법을 붙잡고 있잖아요? 그런데 행하라는 그 계명, 율법에서 우리는 이제 벗어났다구요. 얽매었던 것에서 우리가 죽었어요, 율법에서 우리가 벗어났어요. 율법과 아무 상관이 없어요.

왜 저렇게 말씀하느냐? 저 의도를 잘 알아야 돼. 행하라고 말씀하신 의도가 뭐냐?

첫 번째는 육체로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수 없어요. 제발 지킬 것처럼 이야기하지 마세요. 아직도 이게 정리가 안 돼요 아직도. 어떻게 하면 지킬 수 있는 것처럼 생각을 해요. 지킬 수 없다니까요 육체로는 안 돼요. 육체로는 절대 안 돼요 절대. 그래서 하나님 말씀을 내 의지로 지킬 수 있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이 문제라고 말씀드렸지요.

그럼 왜 못 지키느냐 육체는? 왜 율법이 안 지켜지느냐?

로마서 7:5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이 말씀은 못 지킨다는 말씀이지요, 죄를 짓는 다는 말씀이에요 죄를. 육신 가지고는 안 된다 이 말이에요. 83절에 이걸 명확히 이야기하지요.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할 수 없는, 율법이 할 수 없어요. 무엇 때문에? 육신 때문에 못 한다고. 이 몸뚱아리에 세상 것이 들어와 가지고 절여있기 때문에 안 된다 이 말이에요, 안 돼요 안 돼. 그래서 죄가 발생되고 이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 예수로 오신 거지요.

그러면 말씀 지킴은 안 된다는 것인가? 단지 죄를 깨닫게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죄사함의 피를 힘입어 살기 위해서 계명을 주신 것인가?

그렇지 않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주신 이유는 육신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닫기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그렇기 때문에 니 힘으로는 안 되고 하나님으로 되는 거야, 니 안에 있는 것으로는 안 돼~ 어떻게 해도 안 돼 너는. 그럼 어떻게 해? 하나님을 돼 하나님으로, 그걸 알게 하는 거여.

로마서 64절을 보시면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다 그러지요. 예수를 믿는 다는 게 어떤 의미냐? 예수를 믿는 다는 건 예수 그리스도와 합해서 우리가 십자가에 죽는 걸 의미하죠. 예수님 십자가에 죽으셨어요. 나도 함께 죽었다는 고백이 예수 믿는 거예요. 예수를 영접한다는 말은 내가 십자가에 나 죽을게요, 같이 죽을 게요 그런 말이라고. 그럼 어떤 일이 벌어지느냐?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돼요. 그럼 새 생명 가운데 행한다는 말은 뭔 말이냐~ 그 다음 말씀을 보면 6절에 이렇게 명확히 이야기해요.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내가 예수를 믿는 다고 신앙고백 했을 때, 내가 예수를 내 안에 모셨을 때 내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힌 거여, 내 옛 사람을. 그러면 새 사람은 어떻게 사는 거냐? 아까 새 생명 가운데 산다 했잖아요. 그럼 새 사람은 어떻게 사느냐 이 말이에요. 그건 도대체 어떻게 사는 거냐?

로마서 76절을 보시면 그 답이 나와요.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그랬지요, 그쵸?

74절에서 우리는 율법에 대해서 죽었다 그랬어요. 해라, 하지마라 이런 계명에서 우린 죽었어요. 아무런 상관이 없어요, 아무런 상관이. 그걸 76절에서 명확히 가르쳐주고 있는 거예요.

그럼 우리가 어떻게 하냐? 말씀이 여전히 있는데.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긴대요. 저게 새 생명으로 사는 거예요.

하나님의 자녀는 말씀의 삶을 어떻게 사느냐? 영으로 사는 거예요 영으로. 영으로 한다는 것을 반대로 이야기하면 그 뒤에 이렇게 말씀하죠.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한다 그랬지요. 저 율법 조문은 의역을 해 놓은 건대 글씨, 문자라는 말이에요. 영과 반대되는 게 뭐예요? 글씨, 문자 이 성경에 있는 글씨. 율법에 대해서 죽었다는 말이 무슨 말이냐? 율법이 글씨로 있잖아요 이 문자. 이것으로 말씀의 삶을 안 산다 이 말이에요. 그럼 뭘로 살아요? 영으로 산다고 영으로. 이 말이 어떤 의미냐 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해서 성령을 모신 사람은 이제 문자로 안 살고 이제 이렇게 안 살고 이 문자를, 이 말씀을 기록한 성령님이 내 안에 오셔서 성령님이 말씀하신 것으로 산다 이 말이에요. 이 문자로 안 산다고. 쉽게 말해서 이게 필요가 없단 말이에요. 또 이렇게 말하면 이해를 못하고.

내 안에 있는 성령님이 말씀하시는 그 말씀으로 산다 이 말이에요. 너무 너무 중요한 말씀이에요. 많은 사람들이 놓치고 있는. 사역자를 보면 어떤 사람은 성령으로 새 마음이 되어서 영으로 되어진 사람이 있어요. 예를 들면 이렇게 이야기해요. 화가 저절로 안 나져요. 그런데 그 분 설교를 들어보면 하나님 말씀 지켜야지요. 예수 그리스도 피로 우리가 다 용서 받았고 은혜 받았으니 감사해서 말씀으로 살아야지요. 말씀으로 살고 말씀을 지켜야지요. 이렇게 이야기를 해요. 그러면 듣는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그래 말씀을 지켜야 돼, 의지적으로 해야 돼, 이렇게 할 거 아니에요. 이 진리가 너무너무 감춰져 있어요. 여기에 기록된 말씀으로 한 게 아니에요. 내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씀의 삶을 사는 거예요. 성령으로. 그걸 로마서 82절에서 구체적으로 이렇게 표현하죠.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이 성령이라는 번역은 의역이에요. 직역하면 영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죄와 사망의 법을 먼저 봐 봐요. 여기 법이라는 말은, 지금 8장이잖아요. 앞에 있는 7장의 율법과 똑같은 헬라어에요. 노모스. 율법으로 번역되는 똑같은 단어에요. 그러니까 죄와 사망의 율법에서 너를 해방하였다고 번역해도 되는 단어라 이 말이에요. 그럼 저 죄가 뭐겠어요? 7장에 있는 육체 때문에 율법 계명을 지키지 못해서 죄가 발생하는 거예요. 죄가 발생하면 죄 값은 사망이잖아요. 그 율법의 삶이에요. 그 말씀의 삶이에요. 육체로 말씀을 지키려고 하는 그 삶은 죄를 발생하고 사망에 이르게 하는 말씀, 율법의 삶이라 이 말이에요. 사람들이 그렇게 살았는데 여기서 우리가 해방했대요. 뭐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은 그 법이 아니라, 저 법도 똑 같아요. 다른 율법이 우리에게 생겼는데 다른 말씀의 삶이 생겼는데 그게 뭐냐 하면 영의 율법이란 말이에요. 영의 율법이 어떻게 우리에게 생긴다구요? 이 문자 율법을 기록한 성령님이 내 안에 들어오심으로 내 안에 하나님의 법이 생겨졌다 이 말이에요. 그런데 그렇게 내 안에 있는 영으로 말씀의 삶을 살면 생명의 삶을 살게 된다구요. 사망이 아니라 생명의 열매를 맺는다 이 말이에요.

그래서 4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지요.

율법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렇지요? 율법의 요구가 어떻게 이뤄지느냐? 어떻게 말씀이 지켜지느냐? 육신을 가지고 말씀의 삶을 사려고 하면 절대 안 돼요. 그런데 영을 따라서 말씀의 삶을 살면, 영을 따라서 이 말씀을 삶을 사는 게 아니라 내 영안에 오신 성령께서 내 영으로 하신 말씀을 따라 살면 율법의 요구가 이뤄진다구요. 그게 갈라디아서 말씀이지요. 성령을 좇아 행하라, 성령이 영이라고 했지요. 성령이나 영이나 같아요. 바울이 그것을 섞어서 썼어요. 영으로 행하라 영으로.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영으로 영으로, 성령이 내 안에 오셨어요. 내 안에 계신 성령을 만 나. 그럼 영에서 성령님의 소욕들이 일어난단 말이에요. 그걸 따라, 그게 말씀이다 이 말이에요.

내 안에 일어난 성령의 소욕이 말씀이라구요.

예레미야 31장을 먼저 보시면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그랬지요.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둔대요. 저 말씀이 이제 우리에게 이뤄졌단 말이에요. 성령님이 내 안에 오심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법이 내 마음에 있는 거예요 마음에. 내 속에 있어요 내 영에.

에스겔 3626절 다시 봐 봐요. 27절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둔다 했지요. 그게 26절의 새 영을 너희 속에 두는 거예요. 하나님의 영이, 여호와의 영이 내 안에 들어오면 내 영이 새 영이 되요. 그러면 그게 새 마음이 되요. 그러면 내 육신에 배어있는 굳은 마음, 저 굳은 마음이 세상에 물들여져 있는 마음이란 말이에요. 그것들이 제거되어지고 하나님의 새 마음이 부드러운 마음으로 내 안에 물들여진단 말이에요. 그러면 말씀을 지켜 행하게 되는 거예요. 저게 영으로 사는 거예요. 저게 성령으로 사는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 안에 있다구요 이제.

이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계명을 주신, 행하라고 말씀을 주신 의도예요.

첫 번째는 너희는 육신으로는 안 돼.

두 번째는 영으로 되는 거야.

너희 안에 내가 들어가서 너희가 나를 만나서 나와함께 살면 나로 인해서 니 마음에 내 율법을 넣어 두어서 성령의 소욕이 일어나서 니가 그 영으로 살면 니가 영으로 말씀을 이루게 되는 거야. 그러면 니가 나를 닮아가게 되는 거야.

이게 행하라는 말씀의 의도예요.

그러면 첫 번째와 두 번째 하나님 의도에서 하나님께서 궁극적으로 의도하신 것은 뭐겠어요? 첫 번째겠어요? 두 번째에요 두 번째. 두 번째를 이루기 위해서 첫 번째를 주신 거라구요. 그러니까 이렇게 정리하시면 되요.

말씀을 지키고 싶어 하는데 그걸 어떻게 지키냐면 영으로 지킨다구요.

그럼 어떻게 영의 삶을 사느냐?

하나님이 내 안에 오셨기 때문에 내가 내 안에 오신 하나님을 만나면,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내 안에 모셨기 때문에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면, 그러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영의 마음이 내 안에 일어나는 거예요. 성령의 소욕이, 영의 소욕들이 일어난다구요. 하나님의 속성들이 내 안에 흐르고 그 속성으로 내 몸이 물들어져 간다구요. 그래서 하나님의 성령의 소욕들이 내 안에 일어난단 말이에요. 그걸 제가 이렇게 표현하는 거죠. 내가 하나님으로 물들어져서 하나님 내게 흘러 넘쳐서 내가 하나님 말씀을 이루는 삶을 사는 거예요. 내가 막 의지적으로 노력하는 게 아니고. 지난주에 간증 읽어드린 것처럼 화가 안 나는 거예요. 화를 안 내려고 막 이런 게 아니고 화가 안 나 지는 거예요. 그렇게 말씀의 삶을 살도록 하는 것이, 그래서 하나님을 닮아가는 참 아들이 되는 것이 구원의 경륜의 목적이에요.

그런데 내가 그렇게 온전히 되었으면 얼마나 좋아요~ 내가 그렇게 온전히 안 됐어요. 예를 들면 나는 하나도 안 되었어요. 나는 신앙생활을 1,2년 해 가지고 쪼금 주님으로 성령으로 인한 하나님의 속성들이 성령의 소욕들이 이렇게 일어나는 것이 느껴지고 그렇게 사는 삶이 10% 있다고 해봐요. 그럼 90%는 안 되네요. 그럼 90% 안 되니까 개판치라 이런 말이냐? 아니죠. 그때는 육체로라도 내가 율법을, 말씀을 지키려고 애를 써야지요. 내 안에서 하나님 말씀이 흘러나오지 않는다면, 그러면 이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이 네 이웃을 사랑하라 하셨지, 남편에게 주께 하듯 복종하라 그랬지, 아내를 내 몸처럼 사랑 하라고 그렇게 말씀하셨지, 이 말씀이 내 안에서 흘러나오지 않으니까. 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데 하나님 말씀을 이루고 싶은데 내 안에서 말씀이 흘러나오지 않으니까 이 기록된 말씀을 가지고 할 수 없이 구약 적으로 내가 내 육체의 힘을 가지고 남편에게 복종하기 싫은 말씀을 막 하나님께 굴복시키고 아내를 내 몸처럼 사랑하고 싶은데 미워하고 사랑하기 싫은 마음을 막 굴복시켜서 사랑 쪽으로 나를 몰아가는 꼼지락을 하는 거지요. 그럴 때 죄가 발생하겠지요. 해도 죄가 발생하는 거예요. 왜요? 하나님의 기준은 마음으로 하는 거니까.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이 흘러넘쳐서 하는 거니까. 죄에요. 못해도 죄고 해도 죄에요. 하여튼 의지가 강한 사람이 교회에서 문제에요. 지는 했디야~

그러면 죄를 지었으니까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피를 힘입는 거지요. 그래서 죄로부터, 죄책감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그 은혜가 넘치고 감사, 기쁨이 넘치고 그래서 말씀대로 살고자 하고. 복음의 사이클은 영으로 성령으로 내 안에 가득한 하나님으로 흘러나오는 그 말씀으로 삶을 사는데 있어서 내가 그 정도가 안 되었을 때 필요한 거라구요.

하나님 의도 첫 번째는 그래서 필요한 거예요. 그게 주가 되면 안 된다고.

그러면 다 된 거잖아요. 완벽한 시스템이 구축이 된 거잖아요. 어려우세요? 간단하죠.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은 간단하잖아요.

하나님의 말씀은 어떻게 이루느냐? 영으로. 니가 니 안의 성령님을 모셨으니까 삼위일체 하나님이 니 안에 들어가 계시니까 니가 그 하나님을 만나고 또 만나면 하나님이 니 안에 가득하게 되고 하나님으로 가득하여 물들여지면 그러면 흘러넘쳐서, 니 안에 넣어두신 그 말씀들이 흘러넘쳐서 성령의 소욕으로 니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게 되는 거야. 그게 내 의도다. 그런데 니가 그렇게 안 되지? 그러면 니 육체의 힘을 다 모아서 이 문자로 기록된 말씀을 지키려고 애를 써~ 그런데 너 죄를 짓게 될 거야. 걱정하지 마, 예수의 피로 다 용서했어. 그래서 예수의 피를 지불한 거야. 죄용서 다 받았냐? 그럼 다시 니 안에 계신 주님 삼위일체 하나님 만나고 그 마음으로 또 말씀지키려고 해~ 아직 그 정도가 안돼서 육체로 했냐? 조금 했냐? 하나님 내 수준에 못 미친 거 알지? 그거 죄야. 다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가자. 너에게 꽁짜로 줬어. 예수의 피를 힘입어라. 그래서 죄사함, 은혜, 자유를 누리고 감사 기쁨이 넘치고 그렇게 하면 점점점점 하나님과 함께 하는 영이 그 은혜 속에서 성령님이 내 안에 점점 가득해 진단 말이에요. 그러면서 점점점점 영으로 하나님 말씀을 행하는 삶이 더 많아져 간다구요.

이제 구약의 유대인처럼, 예수님 오셨을 때 유대인처럼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을 곡해해 가지고 벗어나지 마시기를 바래요. 지금 이 진리를 모르고 있는 사람이 수두룩뻑적해요. 빨리 우리가 이 말씀에 서서 이 말씀이 실제가 되어가지고 이걸 알려줘야죠. 고생하는 수많은 사람이 있어요. 교회 다니는 사람이 이 진리를 모르고 이것이 실제가 안 돼 가지고. 저는 어릴 때부터 갈라디아서 5:16 저런 설교를 많이 들었어요. 뜬 구름이야 뜬 구름. 성령을 좇아 행하세요 하는데 성령을 어떻게 좇아 행해~ 내가 지금 같으면 그렇게 반문하고 싶어요. 당신 성령을 좇아서 행한 것이 뭔지 알아? 지금 당신 그렇게 살고 있어? 성령의 열매가 맺히고 있어? 지도 안 되었으면서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해~ 안 돼, 안 된다니까요. 성령의 열매가 맺히는 삶, 하나님으로 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이룬 삶이 뭔지 모른단 말이에요. 하는 것이 기껏해야 죄 지으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 사함 받고. 안에서는 막 목이 마르지요. 말씀을 이루고 싶은데 왜 안 되나? 하나님이 우리 교회에게 주신 거예요. 너희가 먼저 되고 많은 교회를 좀 깨워라. 많은 성도를 좀 깨워라고 먼저 부르신 거예요. 정리가 되셨지요. 기도하시겠습니다.

 

2020년 8월 23일 주일 설교.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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