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나는 피상적인 신앙인가? 실제적인 신앙인가?

마음 아저씨 2019. 8. 11. 19:18

현미의 천국 이사 건에 대해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 같다, 교회 떠나고 싶다 등등 인간적인 반응들을 보면서 조목사님은 이런 반하나님적인 반응이 나온 것을 봤을 때 현미가 살아났다면 이런 인간적인 것이 수면에 감춰지고 뭔가 대단한 신앙이 있는 줄 알았을 것이다. 마지막 날에 이런 모습대로 갔다하면 구원을 보장할 수 없다. 부족이 드러난 것이 감사함이다는 말씀을 하셨을 때 그땐 몰랐다. 이 말씀이 얼마나 소중하다는 것을. 정말로 현미가 살아났다면 경배와 찬양은 더 더 깊어졌을 것이고 우리 교회에 대한 자부심, 목사님에 대한 신뢰의 마음, 서로에 대한 지체의식등등이 커졌을 것이고 반면 수면 아래에 감춰진 이렇게 기도했는데 하나님이 안 들어주시다니, 그럼 뭘 기도를 해야돼? 무력감, 의기소침 등등 너무나 기복적이고 종교적인 모습들이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 땅에서의 삶은 영원의 삶에 비하면 점도 안되는 기간인데 이 땅의 것이 좋다고 내 원함을 채우려한다면 영원의 새하늘과 새땅에서의 삶은 어떻게 될 것인가?

오늘 메시지를 들으면서 내가 이 땅의 신앙, 정도껏 신앙, 하는 척 하는 신앙, 종교적인 신앙 결국 거짓된 신앙이었다는 것이 보여졌다. 현미가 나의 우상이었음이 현미가 천국으로 가고 나서야 안 것이다. 분명 하나님은 나와 여전히 함께 하심에도 불구하고 현미가 가고 나니 그 상실감에 하나님은 계시지 않는 것처럼 종이 호랑이로 전락시켜버린 것이다. 참 그러고도 무슨 하나님 신앙을 한다고 살았을까? 죄송하다. 나의 이 부족이 드러남이 감사하다. 이제부터라도 땅의 신앙에서 천국 신앙으로 하나님 바라보며 가야겠다. 관건은 영이다. 하나님 나와 함께 하심을 정말로 믿고 내 안에 계신 주님을 영안에서 만나감이다. 그렇게 살아갈 때 영원한 천국 신앙은 이 땅에서도 되어질 것이다. 절로 되어지는 그 지점, 그래서 주님을 영안에서 만나고 우리 현미도 영안에서 만나지는 그 지점, 그래서 천국을 절로 풀어내는 그 지점의 삶 기어이 살다 주님 품에 안기고 싶다. 아버지여 그렇게 선하게 선하게 인도하소서. 아멘.